작가의 전작이나 제목으로만 봤을 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커지는 부모와의 갈등을 다양한 상황에 맞춰 알려주는 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양한 상황을 대입해 '만약...'이라는 전제를 깔고 알려주기 보다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느끼고 알아간 것들로만 나열되어 있다. 부모님 두 분의 병수발을 했던 저자이기에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사소한 부분을 언급할 때 크게 공감하게 된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부딪히게 되는 것은 항상 작고 사소한 것들임을 감안하더라도 경험담에서 오는 이야기가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후회를 하지 않아도 되게끔 '하루하루 이 사람과 함께 살며 사이좋게 생활하자'라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존경'입니다. -104쪽

 

병이 든 상태가 '가장 낮은 위치'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든 사람이 인생의 진리에 보다 가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17쪽

 

자식 눈에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모님의 현재가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요. -127쪽

 

부모님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후회'다. 아마 요즘 나와 부모님의 관계때문에 더 그런것일 수도 있다. 당장 후회할 일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후에 분명 나를 후회하게 만들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렵다. 언제나 더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드려야지 싶다가도 내 기분에 따라 행동은 확연히 달라진다. 근데 참 이상한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화는 보통 지르고 난 뒤에 후련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반해, 부모님과의 갈등은 내가 화를 내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후회가 밀려온다는 것이다. 화를 낸 상대는 나지만 속이 후련하기 보다는 조금만 더 참을껄 하는 죄책감이 물밀 듯 밀려온다.

 

순간적으로 화가 끓어오르더라도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면 가능한 권력 싸움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73쪽

 

누군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상대의 표면적인 말과 행동만 받아들이지 말고 좋은 의도를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80쪽 

 

저자는 어머니의 병수발과 아버지의 치매로 인해서 '나이 든 부모'와 살며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당부한다. 매우 뻔한 소리 같지만, 실제로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이라는 걸 조금만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부모님도 몸이 아파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생활하는 것이 처음이고, 그런 부모님을 지켜보며 직간접적으로 간호해야 하는 자식들도 처음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 사회에서도 더이상 병간호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만 지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픈 사람도, 그 사람을 지켜봐야만 하는 가족 누구도 죄인이 아니지만, 사랑으로 시작한 일이 한 가정을 파탄내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결국 가족이라고는 하나 그것또한 인간관계다.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때때로 그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때로는 타인을 대하듯 가족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나를 지치도 하는 가족이지만, 그럴 때는 "무언가 하지 않고도 그저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우리 사회는 잊고 있다."는 말을 기억해보자. 가족은 바로 그런 존재다.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저 하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주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포함해서 돌아올 것 따위는 기대하지 않으면서요. -1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