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를 통해 만난 하와이는 쌔근쌔근 숨을 쉬며 자는 순한 생명체 같았다. 책을 읽는 동안 ‘메이가 거대한 토토로의 배 위에서 재밌어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메이의 얼굴은 바나나의 모습이었다가 내 얼굴이었다가 했다.

    지은이는 하와이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의 풍경과 단상을 차분히 들려준다. 아이와 남편의 이야기만 없다면, 순수하고 맑은 기운을 뿜어내는 소설속의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생각했을 법하다. 친근함이 묻어나는 그녀의 글은 친구 지호가 찍었다는 신비로운 하와이 사진과 잘 어울린다. 어찌나 하와이에 대한 사랑이 깊은지, 바나나는 지속적으로 하와이를 방문하며 소설을 쓰고 수 년 동안 하와이 전통춤과 우쿨렐레를 배웠다고 한다. 여행으로, 취재로, 가족과 친구와 함께 보낸 이야기에서 작가 바나나의 생각과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바나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음에 쏙 드는 하와이언 반지를 만났다고 아이처럼 기뻐하기도 하고, 불친절한 호텔직원에게서 느꼈던 불쾌한 감정을 즐겁게 노는 사람들을 보면서 털어버리기도 한다. 세계의 끝처럼 불쑥 벼랑이 나타난 사우스포인트에서 신비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훌라춤을 배우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한편, 세월이 지나도 전혀 실력이 늘지 않는 훌라 실력 때문에 좌절하기보다 달팽이처럼 조금씩 나아가는 자신을 격려한다. 자신만이 아는 미미한 숙달과 조촐한 기쁨이 있고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배움의 의미가 있다.

    멋진 몸매로 아름답게 추는 전문가들을 보면서 ‘저렇게 잘 추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하고 화려하게 빛나는 그녀들을 부러워하지만 우아한 백조의 수면아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아름답기 위해 음식과 생활을 통제하고 수없이 연습하고 춥거나 더운 곳에서 대기하고 일찍부터 집합해서 분장하는 그녀들의 상황을. 바나나는 소설가인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선생님 소리를 듣고 수상식 같은 화려한 자리에서 빛나고 남의 돈으로 외국여행을 다니기도 하지만,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돌보는 분주한 일상이 톱댄서의 생활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런 것 같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다.

    강렬한 태양, 복작거리는 사람들, 바다와 쇼핑과 음식 등 한낮의 여름이 떠오르는 하와이와 달리, 바나나를 통해서 만난 그곳은 어쩐지 가을과 퍽 잘 어울렸다. 지은이가 사랑에 빠진 하와이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그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에는 물처럼, 하늘처럼 파란 빛이 가득하다.

꿈꾸는하와이, 요시모토바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