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실 해밋이 레이먼드 챈들러나 조르주 심농처럼 많은 작품을 펴냈더라면 새뮤얼 스페이드는 필립 말로나 매그레 반장에 버금가는 탐정캐릭터로 사랑받았을 것이다. 주인공 스페이드는 ‘턱부터 입, 코까지 V자 모양이고 이마의 머리카락도 뒤집힌 V모양인, 전체적으로 유쾌한 금발의 악마 같은 인상’으로 묘사된다. 정의롭고 듬직하게 표현되는 여느 탐정들의 분위기와 달리, 스페이드는 그의 생김새만큼이나 선악이 모호하다. 오히려 나쁜 남자에 가깝다. 책에서 스페이드는 동업자의 아내, 비서, 의뢰인 등 여러 여성들과 미묘한 관계를 맺으며 성적인 긴장감을 보여준다. 거짓 의뢰를 하는 것으로 사건을 몰고 온 브리지드 오쇼네시는 계속되는 거짓말로 스페이드를 이용하고 유혹하지만 “좋아요. 당신은 아주 잘해요.”라는 대꾸로 그가 절대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여러 번 보여준다. 스페이드는 갑작스럽게 살해당한 동료 마일스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하고 역사가 있는 보물 ‘몰타의 매’를 노리는 인물들 간의 얽힌 관계와 비밀을 풀어야 한다.

    해밋은 독자가 스페이드 곁에 바짝 따라오게 허용은 하면서도 도통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몰타의 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하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탐색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속인다. 독자는 대화와 행동과 상황만으로 이야기를 짜맞춰나갈 수밖에 없어서 책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필립 말로가 쓸쓸한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 매그레 반장이 긴 코트와 파이프 담배로 인상을 남기듯이, 스페이드의 트레이드 마크는 ‘말아서 피는 담배’다.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마는 남자는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일 것 같은데, 어쩐지 말쑥한 스페이드가 담배를 마는 모습은 우아하고 매력적이어서 긴 손가락으로 꼼꼼하게 담배를 마는 과정을 넋 놓고 볼 것 같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에서 레이먼드 챈들러는 대실 해밋에 관해 언급했다. 사적인 편지인 만큼 헤밍웨이, 히치콕, 애거서 크리스티 등에게 가차 없는 독설을 풀어낸 것에 비하면 해밋에 대한 평가는 양호한 편이다. 챈들러는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잡지 발행인 찰스 모튼에게 ‘해밋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는지, 두어 개 쓴 시나리오조차 연인인 릴리안 해먼이 써줬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한다. 또 헐리우드 입성으로 엄청난 성공을 한 해밋이 호텔 스위트룸에서 값비싼 실내복을 입고 목에 스카프를 멋들어지게 늘어뜨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누군가 [몰타의 매]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챈들러는 그저 거칠기만 한 다른 사람들의 작품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해밋이 과대평가된 동시에 과소평가됐다고 평하면서 작품을 쓰지 않는 점을 유감스러워하고 이런저런 추측을 덧붙인다. 챈들러든 해밋이든 모든 작가는 고독하고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런 기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진짜 같은 거짓말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 같다.

    좋은 소설이 그렇듯 세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몰타의 매] 역시 무척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힌다. 온갖 술수와 거짓을 분별하고 스페이드를 포함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아슬아슬함을 견디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놀랍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결말을 만나게 된다. 챈들러의 말처럼 나도 더 많은 스페이드를 책으로 만날 수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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