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엄마에게 불같이 화를 낸 적이 몇 번 있다. 자칫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실수가 반복되면서 불안과 염려가 분노로 표현된 것일 테다. 병이 깊어지면서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앨리스를 보면서 어린아이 같아지는 부모님 생각이 자꾸 났다. 환자의 고통을 지켜보고 돌보는 어려움이 담긴 책이나 병을 이겨낸 환자 본인의 성공담에 관한 흔한 이야기와 달리, 비극으로 치닫는 자신의 상태를 들려주는 책은 새롭고 낯설었다.

    하버드대학의 존경받는 심리학 교수 앨리스는 사랑하는 남편, 세명의 자녀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동료인 남편과는 학교로 출퇴근할 때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일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애틋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야망과 책무로 정신없이 바쁠 뿐이다. 막내인 리디아는 대학에 가지 않고 연극을 한다며 떠돌아 앨리스의 애를 태우고 두 사람 사이는 서먹해진다.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 생기는 균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혼생활은, 가정의 모습은 각양각색으로 드러난다.

    길을 잃거나 머릿속에서 맴도는 단어를 말하지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등 당혹스러운 상황이 반복되자 앨리스는 병원을 찾는다. 내심 폐경기증상의 하나이길 바랐지만 ‘조발성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는다. 50세의 이른 나이에 앨리스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병은 가족 모두를 혼란에 빠트리지만 지력이 뛰어난 앨리스 본인의 충격과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책은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지만, 불쑥 고개를 내미는 분노와 참담한 기분, 구멍이 숭숭 뚫린 기억과 악화되는 상태가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을 시리게 한다.

    짧은 생을 아름답게 사는 ‘나비’를 생각하며 엄마의 나비목걸이를 목에 건 앨리스는 컴퓨터에 나비 폴더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질문리스트의 답이 생각나지 않을 경우 나비 폴더를 열고 지시사항을 따르라는 내용이다. 나비 폴더에 자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을 담아두었지만, 방금 읽은 내용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병은 깊어진다.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부모로부터 유전될 확률은 50%이고 유전자가 전해졌다면 발병률은 100%가 된다고 의사는 설명한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받은 첫째딸 안나에게 앨리스가 미안해하는 장면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 진로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리디아가 엄마를 이해하고 다가서는 모습에서 가족의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2년동안 진행된 병으로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앨리스의 이야기는 ‘자아’를 잃어버리는 그 어떤 병보다 무서운 병이 가족이나 나에게 닥쳤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틸앨리스,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