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다. 김중혁 작가는 '농담이 있고 술렁술렁 넘어가고 진지하기도 하고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책'을 꿈꿨다고 했는데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모든 소설가의 산문을 통틀어 가장 웃기고 재밌고 잘 읽힌다는데 ‘오백원’ 건다. [메이드 인 공장]을 읽고 소설가 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작가의 소설은 어떨까 궁금해서 책을 찾아보던 중 제목에 꽂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책을 선택했다. 한데 소설이 아니고 또다시 산문이었다.

    작가들의 산문을 읽다보면 그들에게서 묘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일찍부터 책을 탐닉하고 강한 자의식 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며 성장한 과정이 글을 쓰게 한 자양분이라는 공통점과 저마다 다른 장르와 분위기로 개성을 발휘하는 차이점을 갖는 것이다. 김중혁 작가에게서는 공통점보다 개성이 훨씬 도드라져 보인다. 개성은 유쾌한 농담으로, 엉뚱한 아이디어로, 온갖 호기심으로 발현된다. 지은이는 꿈이 별로 없었고, 어렴풋하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뭐라도 되겠지,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테니 내가 하고 싶은 걸 뭐라도 할 수 있겠지.’

    여러 길을 돌고 돌아 소설 습작을 시작하면서 낮밤이 바뀐 생활을 했고 남들이 일하고 있을 때 빈둥거린다는 죄책감과 아무것도 되지못할까봐 두려웠다고 한다. 벽돌을 쌓든 땅을 파든 뭔가 눈앞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일이 하고 싶었다는 지은이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낭떠러지인지 계단인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압도할 때 무기력과 패배감이 나를 꽁꽁 옭아맨다. 지은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밤새 글을 썼으니 낮에 빈둥거린다고 괴로워할 일이 아니었음을,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고 관대해야 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든 그 시간들은 결국 ‘나’를 이룬다. 쌓인 시간들을 겪어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수많은 시간들을 통과해야만 미래의 ‘나’가 있을 수 있다.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뎠던 순간을 들려주는 지은이의 글에서 어쩐지 위로를 받게 되고 ‘얍’ 하고 기운을 내게 된다. [뭐라도 되겠지]에서 체념과 실망이 아닌, 여유와 낙관이 느껴진다.

    마흔이 넘은 남성 작가에게서 발랄한데다 상큼함-만화가 강풀에서나 있는-을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도부록처럼 펼쳐지는 목차와 잘 그렸다기보다 개성이 가득한 일러스트와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기발한 ‘발명가 김씨’의 아이디어는 책에 윤기를 더한다. [메이드인 공장]을 통해 괄호로 속마음을 표현하는 김중혁식 문장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래도 괄호 안이나 밖이나 다 자신의 속마음일 텐데 왜 굳이 괄호를 치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고, 읽기는 여전히 불편하다. 그럼에도 책은 무척 잘 읽힌다. 자기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는 여느 작가와 달리 밖으로 발산하는 지은이의 스타일 덕분이다. 락음악을 들으며 소설을 쓴다면서 소음에 유별나게 민감하고, 수더분한 것 같으면서도 까칠하고, 웃기면서 진지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엉뚱한 소년’일 것 같은 지은이의 소설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뭐라도되겠지, 김중혁,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