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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をゆく飛行機 :: 角田光代

이제는 오래전의 일이 되었지만, 결혼하기 전 가족, 즉 친정과 관계가 가장 험악했을 때는 홧김도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호적을 분리 해야되나 쌍방이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새어머니와 나의 사이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상처가 될 정도였었다. 다행히 그 고비는 넘겼지만 이렇다 할 화해의 과정이 없어 계속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주고 받는 말도 없이 고통스럽게 한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뜻밖에 결혼하여 분가를 하게되자 나와 친정 사이가 급속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급속히, 라고 말해도 다른 일반적인 가족 마냥 살뜰해졌다는 게 아니라 서로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걸 누그러뜨린 정도였지만 이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떨어져나와 한 해, 한 해 보내면서 서로가 품고 있던 증오와 미움이 사라져가고 아이까지 태어나자 적어도 겉보기엔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비록 1년에 만나는 횟수가 손에 꼽을만큼이고 전화 연락은 거의 안하다시피하니 남이 보면 여전히 사이가 나쁜 관계로 볼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또 친정이 받아들이기에도 현재의 우리 사이는 매우 좋은 편인 것 같다.

나야 조금 남다른 케이스라지만 남편의 경우를 보면 조금 의아하다. 매우 헌신적이고 자식밖에 모르며 딱히 성격이 모날 것 없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도 부모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다. 물론 옛어른들답게 매우 가부장적이고 장남 우선주의에 사로잡혀 있으셔서 그러한 부분이 막내로서 자라오는 동안 서운함을 느꼈을 여지가 높긴 하지만 부모에 대해 하는 정도가 내가 친정 부모에 대하는 태도와 별다를 게 없다. 고부간의 갈등이 생겨도 무조건 내 편만 들어주니 내 속이야 편하지만 저쪽 부모님의 심정은 굳이 묻지 않아도 어느 정도 서운함을 짐작하게 된다. 그렇다해도 솔직히 말해 나는 남편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내 편을 들어줘서라기보다 부모 자식관계는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이 되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효' 를 코드로 놓고 얘기하자면 우리가 양가 부모님께 대하는 태도는 분명 불효가 되겠지만, 내 스스로가 부모가 된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효' 를 미덕이라하여 자식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횡포나 다름없다고 여겨진다.

곧잘 부모에게 잘하지 못하면 '너도 네 자식한테 당해보면 안다' 고들 하지만 자란 환경이 일반적이지 못해서인지 그 보편화된 말에 수긍할 수가 없다. 자식한테 '당할' 게 뭐가 있을까? 내 선택으로 아이를 낳았으니 나름껏 키워 사람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는 게 당연지사인데 어째서 투자했다 손해라도 본다는 식의 표현을 할까? 누군가는 방임이라 말한들 제때 먹이고 아프면 돌보고 적절 시간 놀아주는 기본 이외에 아이에게 올인하여 희생하지 않으려 하는 성향이라 더더욱 아이에게 받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사람과 사귀건 설령 제 짝으로 동성을 택한다 해도 나는 간섭하여 가타부타할 의향도 없거니와 그럴 이유도 모르겠다. 독립하여 성인이 되면 지금 내가 다른 타인을 대하듯 똑같이 존중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혈연 관계가 아예 없던 일이 되거나 피가 흐려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부모 자식간의 수평적 관계다. 자칫 '다 키우면 관심을 끊고 살겠다' 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상호 믿음을 전제한 '자유' 를 얘기하고자함이다.

지나치게 가까운 가족은 부담스러워해도 가족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죽고 못살 것 같았던, 온전하지 못했던 내 부모와의 관계도 지금 이렇게 원만해진 것을 생각하면 결국 인력으로는 뗄 수 없는 게 가족 관계라고 믿게 된다. 하나 흠집 없을 것 같았던 시댁의 가족이 아무리 애틋하다한들, 가족주의에 입각해 어떻게든 끌어 모으려 한다한들 때되면 뿔뿔히 흩어지게 되는 모습을 보니 또한 강제화 할 수 없는 것이 가족이라고도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기 때문에 항상 모여야 되고 가족이기 때문에 항상 함께해야 될 것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내보냈다 또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당장은 함께 모여 있는 것이 편하고 즐겁고 안정적이라 해도, 그래서 변하는 것이 두렵고 서운하고 슬프다 하더라도 그래도 '가족' 인 것을 인지하고 위안 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는 나는, 아직도 얼굴 모르는 친모를 그다지 '보고싶다' 애틋해 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되리라 알 수 없는 믿음을 가지며 살고 있다.

원제는 [밤을 나는 비행기夜をゆく飛行機] 로, 내용을 보아 한 곳에 영영 머무를 수 없는 가족을 은유한 것이라 짐작된다. [공중정원] 이후 또 한번의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하여 처음엔 결국 같은 얘기를 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왠걸, 작가의 필력을 너무 우습게 봤나보다. [공중정원] 에서는 세상에 완벽한 가족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면 이 작품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흩어져도 가족은 가족이다 라는 제법 묵직한 주제를 가볍고도 예사롭지 않게 풀어 놓는다. 가능한한 작가의 작품 발표순대로 읽으려고 했는데, 앞서 내놓은 작품들도 군더더기 없이 훌륭했지만 발표를 거듭할수록 훨씬 여유로워지고 능수능란해지는 작가의 솜씨를 발견하게 된다. 주제 전달이 명료한 단편들도 좋지만 그의 능력은 호흡이 긴 장편일수록 더 진가가 발휘 된달까. 무엇을 얘기하고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초심과 뚝심을 잃지 않는다는 면에서 그렇다.

사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을 전작 완독했다 생각했건만, 작품 목록을 보니 아직 번역되지 않은 소설집만 23권에 육박한다. 이미 나온 번역집이 장단편 소설 열네권, 공저집 한권, 앤솔로지 한권인데 그것들을 합쳐도 나오지 못한 책 권수에 못미치는 셈이다. 소설집 말고도 기행문이나 에세이가 10권, 공저집이 9권, 다른 작가들과 함께 참여한 앤솔로지는 15권 가량인데다 아직 출판되지 않은 미수록 단편만도 수십편에 이르고 심지어 직접 번역한 외국의 동화집까지 그의 작품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가장 최근의 소설집이 장편으로선 작년 9월에, 단편으로선 이달 15일에 발매 되었다. 한때 글쓸 의욕을 잃었다는 작가의 말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나이에 비하면(1967년생) 놀라운 필력이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문예 잡지 시스템의 발달 덕인 면도 있다) 특히 최근엔 주부가 주인공인 소설을 중점적으로 쓰고 있는 모양인데, 유아 유괴를 다룬 [팔일째의 매미 八日目の蟬] 와 작가가 모친을 잃고 쓰게 된 [마더콤マザコン], 출산 에피소드를 그린 [예정일은 지미 페이지 予定日はジミ- ペイジ] 등이 내용 소개만으로도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니 조속한 시일 안에 국내에도 꼭 소개되었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