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라는 영화를 봤어.

노출과 늙음에 대한 이야기, 나이든 사람도 똑같이 아름다움과 사랑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뭐 그런 얘기들 속에,그저 그런 자극적인 내용의 영화라는 생각에 안보고 싶다고 버티다가 비가 와서 그랬나봐.

 

좀 촉촉한 감성적인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다보고 나니 정말 축축하게 먹먹하네.

먼저 이 영화를 보고 실망한 부분부터 말할께.

 

예전 정지우감독의 영화<에피엔드>를 연상케 하는 내용과 장면들이 눈에 띄던데, 치정과 불륜으로 인간의 감정을 극대치로 끌어 올려서 복수와 살인으로 끝맺으면서, 그 감정의 덧없음과 파국적인 결말을 드러내는 극적인 장치들 말이야.

 

물론 한정된 129분이란 시간 속에 무언가 시원한 결말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기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니면 원작이 소설이라 그 한계 내에서 영화로 담아낼 수 있는 한정된 부분과 생략법 속에서 주제만은 강력하게 표현해 내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과 힘이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들어.

 

76살의 시인, 교과서에 그의 시가 실릴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감수성과 그의 철학, 인간적 아름다움이 질투와 분노로 인해 제자를 죽이고 싶도록 치닫고, 결국 자신 마저 황폐한 죽음만을 기다리는 절망의 상태로 몰아넣어야 하나 하는 아쉬움이 너무 커서일까.

 

 

아니면 나는 결국 76살의 남자의 욕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해야 되는건가.

 

왜 아름다움과 소유하고픈 욕망과 사랑하는 이상적 연인에 대한 사랑을 젊은이들의 당연한 권리로만 한정시키고 당연시하냐고,

나이를 먹으면 그 나이의 수 만큼 인간의 오욕칠정과 순수한 본능을 벗어나서 좀 더 자유로운 인간으로 한단계 올라서야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하냐고, 이 또한 편견이고 무지일 뿐인걸까.

 

하지만 이 영화가 햇살과 나무의 싱그러움과 자연이 내뿜는 그 생생한 푸르름과 더불어 늙어가는 한 멋진 인간, 이제 갓 피어나는 아름다운 소녀와의 대비를 통해서 진한 색깔의 그림자를 가슴 속에 드리우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교가 울면서 하는 말 있잖아.

"저는 제가 그렇게 아름다운 아이 인지 잘 몰랐어요."

만약 알았다면 그렇게 너무도 쉽게, 마음이 통하지도, 서로를 향하는 감정이 애틋하지도 않은데, 단지 혈기왕성한 젊은 남녀가 외롭다는 이유로 뒤엉켜서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사랑을 모욕하지는 않았을거예요 라는 말로 들렸어.

 

근데 나는 정말 젊은가. 만약 젊다면 물리적인 나이는 몇 살까지로 잡아야 될까.

세상이 허용하는 젊음이라는 나이에 딱 그 나이에 맞추어, 그 나이가 지나면 내 욕망도 청정해지고 깨끗해져서 더 이상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게, 정말 멋있게 늙어감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자신이 없으니 기도하듯 읊조린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지혜와 충분히 만끽하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길 빕니다.

 

그리고 혹여 가질 수 없는 것들과 가져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하여 강하게 욕망하는 마음을 품게 될 지라도 나로 인해서, 그 아름다움이 파괴되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는 인내와 참을 줄 아는 강한 힘을 주십시오.

 

늙음은 절대로 추하거나 슬픈 현상이 아니라 단지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아무런 감정없이 그냥 시들어서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고, 다만 자연이 순환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임을,... 자족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