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인상파 화가를 주제로 한 미술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노르망디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이었는데 도슨트 시간에 맞춰 가서 그림의 탄생 배경도 들으며 감상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사진 인문학>이란 책을 읽으면서는 도슨트처럼 사진의 좋은 길잡이가 돼 주길 바랐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텍스트가 없으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기에 배경 설명은 필수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예상대로 지은이는 사진 비평가로서 해박한 이론을 곁들여 사진 속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담아냈다.

 

총 3부로 나눠진 이 책은 사진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부터 사진 작품의 해석, 작가들의 작업노트 설명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우리가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듯이 사진도 하나의 ‘도구’로서 이해하라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모든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에 박제되지만 사진은 존재에 대한 성실한 증명자료가 된다. 기록의 기능을 이용해 우리는 다양한 생각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비평가의 평을 따라 다양한 사진을 감상한 2부. 이 책에 <사진 인문학>이란 제목이 붙은 것은 사진을 통해 인간세상, 나아가 사람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인간’세상에 대한 성찰이 많이 담겨있는데 최원락의 <사진의 힘>, 이순남의 <벽 속의 사람> 등을 보며 세상 속 소외된 인간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최원락 씨는 의사이자 사진 작가인데 부산 태극마을에서 한 청년을 치료하며 특정인이 겪는 슬픈 역사를 사진에 담아냈다. 앙상한 나뭇가지 뒤로 태극마을이 보인다. 스산한 흑백 사진이 개인의 슬픔을 고조시켜 담아낸다. 이순남 씨의 <벽 속의 사람>은 울산 신화마을을 배경으로 하는데 ‘환상의 벽’이란 벽화 앞에 웬 할머니가 꼿꼿이 서 있다. 화려한 꽃밭과 할머니의 실제를 대비시켜 늙은이들의 소외 대 그들의 정을 맞물려 표현한다. 소외된 이들의 슬픔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연신 밝게 웃는 할머니 덕에 씁쓸하지만 삶의 기쁨도 느꼈다고 한다.

 

사실 사진을 감상하는데 정답은 없다. 작가의 큰 의도 속에서 자신만의 창작 독해를 하는게 좋다고 저자는 권한다. 하지만 그 의도조차도 엇나갈 수 있으므로 사진 옆에 붙은 제목이나 캡션, 작업노트를 참조하면 감상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3부에 나온 작가들의 작업노트를 보며 사진 감상을 하니 훨씬 편안한 느낌이었다. 대화를 할 때도 화자의 의도를 알아야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듯이 사진도 작가의 의도를 대충이라도 알아야 마음 편히 사진을 감상, 평가할 수 있는 것.

 

3부에서는 윤창수의 <NINE>이란 작품이 인상 깊었다. 라면 9개가 노란 프레임 위에 놓여있다. 인스턴트식의 편리함을 추구하고 몰개성, 획일화로 대변되는 이 시대를 비판하며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 여기는 작가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로 시작해서 D(death)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신의 축복으로 세 개의 C를 가지게 됐는데 그것은 선택(Choice), 기회(Chance), 변화(Change). 선택을 통해 기회를 만들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신의 축복이지만 현대사회의 인간들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 나이 별로 해야 하는 인생 과제들이 있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낙오자가 된다. 우리가 비정상적인 붕어빵 공장에 놓여있는 건 아닌지 반문하는 작가의 의식이 맘에 들었다. 그것을 9개의 라면으로 표현한 것. 김호영의 <어머니의 땅>은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의 ‘에코 페미니즘’을 엮어 작업노트를 꾸미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는 평범한 농촌 땅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 속에 무기력, 답답함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핵발전소 고리원전 1호기 옆 문중마을의 모습인데 반다나 시바는 과잉생산에 반대하고 적절한 소비를 주장한 사람이다. 자원을 만들어 풍부한 삶을 사는 것보다 자급자족하며 건강하고 깨끗하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이미지 세상’에 살고 있다. 긴 글, 긴 말보다 사진 한 장이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때가 많다. 패스트 시대이기에 사진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사진 해독 능력을 기르는 것은 현대인들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핸드폰 카메라 기능으로 누구든 사진을 매일 양산하는 시대에 사진 인문학에 익숙해지면 ‘이미지 세상’을 사는데 행복한 취미를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 사진 프레임 속 세상이 어쩌면 진짜 세상을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돼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