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으키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착각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
 
 
  올해에는 심리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보자고 생각했다. 마침 신간으로 '보이지 않는 고릴라'가 나왔다. 이 제목과 저자들의 이름으로 언뜻 생각나는 건, '변화맹(change blindness)'이다. 내가 보는 개론서에는 '감각' 파트에서 대상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 '변화맹'이라고 한다며 문짝을 든 인부들이 지나가면서 길묻는 사람이 바뀌는 실험과, 고릴라와 공 패스 갯수 세기 실험이 소개되어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관련된 실험을 또 하나 했는데, 짧은 영화속에서, 소품들이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바뀐다던가, 등장인물의 옷 색, 심지어는 등장인물 자체가 바뀌게 해놓고 피실험자에게 달라지는 부분을 찾게 하는 실험이 그것이다. 이것은 내가 보는 개론서에는 부주의 맹시를 설명할 때 나온다. 사실 이 영화실험에서도 피실험자들은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변화맹, 부주의맹시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이 두 개념이 관련은 되지만, 다른 개념임을 확실하게 알았다. 개론서에서 잡힌 오개념이 바로 잡힌 순간이다. 
 

 제목만 살피면 변화맹이나 부주의맹시만을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일으키는 다양한 착각에 대한 사례와, 실험내용들이 소개되어있다. 사실, 고릴라 실험이 이렇게 다양한 착각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전혀 몰랐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우리가 살면서 간과하고 보지 못하는 여러가지 착각들이라고 생각하면 여러 면에서 다른 사례들에도 대입하기 좋은 비유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한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뉴런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 뇌는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복잡한 구조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우리 뇌가 착각, 착란을 일으키거나 병에 걸리기도 한다'고.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착각- 주의력 착각, 기억력 착각, 자신감 착각, 지식 착각, 원인 착각, 잠재력 착각- 등을 보면서 '인간은 얼마나 멍청한가?'라기 보다는 '얼마나 복잡하면 이런 착각을 할까? 이런 착각의 적응적인 측면은 무엇일까?'에 초점을 두어 읽으려고 노력했다.

 거의 생소하지 않은, 현실에서 내가 자주 느끼는 나의 착각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출처불분명의 오류/출처오귀인이 자주 있는 편인데, 책에 소개된 것처럼 남이 겪은 이야기를 듣고 내 얘기로 착각하고는 그 얘기를 해준 사람에게 얘기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어? 너도 그런 적 있었어? 내가 전에 얘기 했지? 나도 그런적 있었다'고 상대방이 말하고, 그러면 나는 내 기억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착각은 전두엽 발달이 미숙/쇠퇴할 때 일어난다는데, 내 전두엽에 문제가 있나 의심스러워지는 슬픈 상황인데 책을 읽다 보니, 노인이나 아동 뿐만의 이야기는 아닌 거 같아서 약간 안도했다. 뭐, 이런 실수가 인간적이지 않나..? 물론 중요한 상황에 조심해야겠지만 말이다.

  망각 같은 경우는 다니엘 샥터의 '기억의 일곱가지 죄악'에서 다양하게 나오는데, 부주의로 인한 인출 실패같은 내용은 이 책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 거 같다. 기존에 망각으로 묶여진 우리 기억의 실패와는 다른, 다른 범주로 구성된 이 책을 읽으니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상황의 긍정, 혹은 부정적인 부분에 맞추어 과대평가하거나 스스로를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심리학 공부할 때 그냥 이렇게 한줄 보는 것보다, 이젠 책을 보고 신중하게 진단하는 의사를 능력없는 의사로 평가하기 보다는 '신중하군!' 하는 쪽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건 '대장금','허준','하우스 M.D', '싸인' 같은 데서 머릿속에 모든 증상들이 입력 돼 있는 듯 행동하는 가공할 의사들을 많이 보고, 자신감 있는 의사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책을 보면서 진단해준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나를 오진하지 않고 빠르게 쾌유했던 일도 떠오른다(물론 이런 경험 하나로 전체를 평가할 순 없지만!). 

 지식 착각도 내가 참 잘 하는 건데, 어쭙잖게 안 상태에서 오지랖 넓게 남 일에 참견하며 조언을 주다가, 정말 실력이 올랐을 땐 그 예전 상황도 부끄럽고, 슬럼프에 빠지거나, 정작 실력에 자신이 없어 책임자를 맡고 싶지 않는 상황이 왔었던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아니면 잘못된 정보를 말해서 나중에 부끄러운 상황이 오거나.. 이런 일이나, 내 기억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항상 메모하고 일기를 써야할 거 같다.

 우리 기억은 꺼낼 때마다 덧칠되어서, 기억이 추억..? 내지는 소설이 되곤 하는데, 그건 당일 기록한 일기도 그런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한참 지난뒤의 회고보다는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밀린 일기가 나중에 같은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얘기랑 비교해볼 때 거의 소설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기억력 착각으로 떠오르는 게 있다면 사건25시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녹화해서 몽타주를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해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던 경험도 떠오른다. 참 울적해지는데... 이럴 때 과연 몽타주를 믿어야 하는가? 내가 피해자가 됐을 때 범인을 잡으려면 얼마나 더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나 문득 심각하게 걱정이 되었다. 늦은 밤길에 정말 무서운 사람을 만나서 필사적으로 도망친 적도 있었는데, 그 때 그사람이 둥글둥글하고 통통한 사람이었던 것만 기억이 나지 눈썹모양이 어땠는지, 쌍꺼풀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 것 같다. 나는 도망치기 전에 똑똑히 스캔해두겠다 생각했었는데도 말이다...

 직관력 착각은 심리학 개론서에서 '추단법 heuristics '으로 인한 오류를 보여주고 있는 단원 같다. 한 예시에서 나도 여태 책을 읽으며 고민했던 오류들을 다시 범하고 있었다. 그 때의 충격이란! 이 책을 읽고도 아직 나는 많이 안다고 착각하고, 부주의하며, 내식대로 기억하고, 읽어놓고 기억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문득 내 주변이 모두 보이지 않는 고릴라들로 가득 차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외출 할 때 엘리베이터 타고 한참 내려가다가 두고 온 게 꼭 한두 가지씩 생각나고, 메모를 하려고 하면 하는 도중에 까먹고, 가끔 출처기억이 안되서 신빙성있는 얘기도 '카더라'통신으로 만들어버리고, 직관 믿고 까불다가 좌절하는 경험이 얼마나 많은지.. 한때는 모 방송 다큐로 나왔던 '모차르트 이펙트'를 믿고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다가 침흘리며 잔 경험도 많다. 이 팔랑팔랑 귀..

 

 나만 겪는 경험이 아니라는데에 안도도 되고, 공감도 많이 갔던 책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내가 많은 착각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실수를 조금은 더 잘 인정하고, 더 조심하며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굳이 파헤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지나쳐도 되는 것으로 결론나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엄청난 실수랑 연결되기 보다는 사소한 실수, 덤벙댐으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아마도 클 것이다. 그냥 조금만, 아주 조금만 보이지 않는 투명 고릴라들 중에 아주 '위험한' 고릴라들을 좀더 잘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지금부터 키워야 할 거 같다. 이세상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살기엔 너무 피곤하다. 그냥 나 하는 일에서, 나 하는 공부에서, 바둑 선수들, 체스 선수들이 자기 판에서는 주의력이 일반인들보다 높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고릴라를 찾을 수 있게 되면, 그게 남들과 차별화된 전문성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서, 차브리스, 사이먼스 교수님들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