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그대로 컬트한 영화였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원작인 이 소설은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주 여행을 소재로 한 SF의 겉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SF를 상당히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그 설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 모든 과정까지 SF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틀을 완전히 벗어난 모습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먹히는 '병맛'이라는 컨셉트를 세상의 어떤 작품보다 더 잘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이 작품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지독한 블랙 코미디를 통해서 처음 등장하고 바로 사라지는 지구와 지구인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세상의 이야기를 냉소적이지만 너무나 정확하게 풀어낸다는 것이다. 바로 그 부분을 제대로 찾아낸다면 이 작품의 재미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긴 제목의 이 이야기는 같은 제목의 이야기 속의 '안내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안내서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평가하는 부분은 '대체로 무해함'이다. 하지만 그 '대체로 무해한 지구'는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사라진다. 우주에 고속도로가 생기는 과정에서 그 고속도로의 부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정에 대한 항의 혹은 문의를 하라는 공고문은 공고가 되었음에도 지구인들은 알지 못한다. 외게인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지구인들에게 그 공고는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시작과 동시에 지구를 없애버린다. 그리고 이 우주에는 2명의 지구인만이 남게 된다. 이 초반 이야기만으로도 우리는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이야기를 조금은 알 수 있다. 바로 그 작은 시작의 이야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에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이야기도 바로 살짝 모습만 바꾼 우리의 이야기이다. 이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모습과 이름이 다르지만, 인류가 살아온 역사를 통해서 한 모든 바보같은 짓들을 모두 만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습들을 통해서 바로 우리의 지금을 보고, 이 겉모습만 SF인 작품이 전하는 진짜 이야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이거나 지독하게 불합리한 일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 모습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들이 조금은 미친짓처럼 보이지만, 그 조차도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언제나 합리적인 척하지만, 한 번도 합리적인 적이 없었던 세상을 우리는 바로 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