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다 나는 어떤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의 책을 단 한권도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굉장히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책을 읽는다 생각했고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는 책을 멀리하는 사람조차도 책 제목만은 아는 그런 책이라 당연히 읽었을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아쉬웠고 씁쓸한 기분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여러면을 볼 수 있다. 작가로서의 삶, 인간으로의 삶. 작가로서의 헤르만은 꽤 충실한 삶을 살았다. 책을 보면 작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가 특히 그렇다.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자신의 작품에 담았다. 헤르만은 여행을 좋아해서 나라에 구애받지 않고, 곳곳을 다녔다. 친구들, 혹은 홀로 떠난 그 여행의 경험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있다. 인도를 갔다 온 후 쓴 싯다르타가 그 여행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소설 속 등장인물에 자신의 삶을 덧입혔다. 첫사랑과의 이야기, 아내와의 불화 등 당시의 작가의 경험이 작품에 들어있다. 첫번째 아내였던 마리아는 헤르만이 쓴 소설을 보고 남편의 심리상태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하니 작품 속 등장인물과 자신을 얼마나 동일시했는지 알 수 있다. 작가로서의 헤르만 헤세의 삶은 작가 혹은 작가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꿈 꿀 영광은 다 누렸다. 노벨문학상을 비롯한 저명한 상들을 받았고, 정체를 숨긴채 예명으로 쓴 작품조차 상을 받을 정도였으니 수많은 문학도들의 우상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은 범인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아니 적어도 헤르만은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 간듯 보였다. 그는 한마리의 외로운 늑대였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만을 아름답게 간직했다. 현실이 된 첫째부인 마리아, 두 번째 부인 루트, 세번째 부인 니논과의 생활은 그를 병들고 지치게 했다. 누군가와 무엇을 공유하는 삶이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고, 혼자있을 때에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편지로는 숱한 애정을 쏟다가 막상 여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불편해했다. 누군가에게 구속당하는 삶이 싫었던 헤르만은 여자의 관점으로 보자면 좋은 남자는 아니었다.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결혼이라는 제도를 꺼내거나 자신에게로 오려고 하면 거절하고 도망쳤다. 여자들이 자신에게 쏟는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자신을 생활에 간섭하면 간섭할수록 질려했다. 책을 읽으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럼에도 헤르만 헤세는 왜 3번이나 결혼한 것일까? 그토록 제도라는 것에 얽매이기 싫었다면 결혼하지 않았으면 되었을텐데. 이 책안에서의 작가라면 아마도 금전적부담 없이 집필활동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세 부인 모두 부인 쪽이 부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금전적인 부담으로 헤르만을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헤세는 돈 걱정을 그다지 하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았을까? 또 일단 결혼을 하면 결혼하자고 들볶이는 일도 없을테니.

 

어떤 곳을 봐도 헤세는 한 번의 결혼만이 언급되어 있다. 첫번째 부인 마리아. 슬하에 있는 3명의 자식들도 마리아와의 아이로, 이후의 결혼에서는 아이가 없다. 그리고 결혼생활도 짧았다. 생전의 헤르만 헤세의 전기에서도 루트와 니논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가 그러기를 원했다고 한다. 결혼생활은 모두 순탄하지 않았는데, 특히 두번째 부인 루트와의 생활은 룸메이트만 못했다. 같은 호텔에서 지냈으나 다른 방에서 지냈고, 산책을 하거나 밥을 같이 먹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결혼식날 조차도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지 남편에게 물어봐야 했을만큼. 헤르만의 어떤 점이 여자를 그토록 맹목적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런 결혼생활에서도 그를 놓지 않도 싶어했다. 그의 날카로운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위해 노력해야 했고, 이유모를 화에도 참고 지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의 헤르만 헤서의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해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인 조차도 본인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사상이나 예술관 때문에
내 인생에서, 혹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에 봉착한다.
나는 사랑을 부여잡을 수도, 인간을 사랑할 수도,
삶 자체를 사랑할 수도 없다.
- 헤르만 헤세

 

수많은 소설에서 사랑을 다뤘지만 정작 자신을 사랑할 수 없고, 자신의 삶을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한 헤르만 헤세. 그의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그 작품이 쓰일때의 헤르만 헤세의 감정이나 경험을 엿볼 수 있는 만큼 이 책 역시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실제로 주고 받은 편지들이나 그 당시 사진들도 종종 볼 수 있어 진짜 헤르만 헤세라는 사람의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