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아니지만 지구 정복」, 안시내, 처음북스(2015)

20년전쯤엔 대학생들의 해외여행이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어학연수차 해외로 나가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소수였습니다. 저는 여행을 좋아했고 기회가 된다면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인도네시아로 선교를 떠나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선교라는 특성상 관광이 아니었고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여행이라 더 즐거웠습니다. 그로 부터 4년 뒤 사랑의 집짓기 해외 봉사로 인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1살 초보 여행자의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 정복」을 읽으면서 20대의 저로 돌아갑니다. 저자가 여행을 하며 느꼈던 것들에 "나도 그랬어."라며 맞장구를 칩니다. 인도로 출발하기 전의 두려움은 사람을 만나면서 잊혀졌습니다. 15년 전의 인도 기차는 비좁고 더웠고 10시간을 넘게 타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인도는 덥고 습해서 숨 쉬기도 편치 않았습니다. 거짓으로 친한 척하는 현지 친구도 있고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헤어지는 것을 슬퍼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늘 과분하게 사랑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 정복」을 읽으며 혼자 달랑 350만원 들고 141일간이나 여행을 했다는 사실만큼이나 저자의 삶에 관심이 갑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아픈 엄마를 두고 떠날 수 있었던 그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어쩌면 지금이 아니면 절대 낼 수 없는 용기였기에 떠나야 했을 지도 모릅니다. 책에는 정제된 표현과 흥미를 끌 만한 사건들이 가득차 있지만 저는 그 사건들 뒷면에 숨겨져있을 감정들을 읽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생각이 아닌 스무 살에 길 위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가난하기에 하고 싶었던 여행을 하면서도 어깨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 하고 뭔가를 하기 전에 머리 속이 계산부터 해야 했습니다. 물을 마시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다른 여행자들과 늘 비교가 됐습니다. 여행을 떠났어도 가난한 현실에서는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남들은 하지 못하는 꿈을 이뤘다고 스스로 뿌듯해했습니다.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 정복」을 읽으며 이제까지의 제 삶을 돌아봅니다. 어려운 일들을 잘 견뎌냈다고, 이제까지 잘 해냈다고 스무 살 적 저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141일간의 여행을 저자는 즐거운 여행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성장통을 앓았던 여행으로, 고독을 배운 여행으로 기억합니다. 여행은 어떤 형태로든 스스로를 성장시켜 줍니다. 그것이 저자처럼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더욱 그럴 겁니다.

먼저 여행을 다녀온 저는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 정복」을 읽으면서 감상에 젖지만 여행을 다녀오지 않은 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도전장 같을 겁니다.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해외에서 적은 돈으로 오래 버티기와 같은 목표를 세운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여행지에 관해서 알려주고 저가 항공권을 구입하는 방법, 카우치셔핑 문화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여행을 떠났을 때 이십 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모한 것이 아름다운 용기로 보이고 젊기 때문에 더 쉽게 세상과 친해질 수 있습니다. 젊고 발랄한 여행자와 늙고 가난한 여행자 중에서 누가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까?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 정복」는 떠날 용기가 없는 젊은 이십대에게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십대가 아닌 저에게도 희망을 줍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어느 날에는 우리 모두 길 위에서 여행자처럼 만날 수도 있겠다고 말입니다. 그 여행에서 우리는 인생에서 고독이 주는 의미를 곱씹고 있다가 서로를 보면서 고독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여행, 인생의 어느 때에 들어도 가슴 설레는 단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