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시로 들려주는 그의 명징한 목소리.

 요즘은 단독주택들이 사라지고 대부분 대리석으로 지은 빌라 건물이 많이 들어서다 보니 집 주변에 나무들이 사라졌다. 가을은 무르익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가을을 대표할만한 것들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공원에 가야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있는 나무들을 보고, 한들한들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며 비로소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서늘한 바람, 사람들의 두터워진 옷, 색감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해는 더 짧아져 가을의 시간을 완연하게 느낀다. 올해 같이 무더운 여름에도 덥다, 덥다하며 더위를 타는 듯 잘 보냈는데 정작 가을이 깊어가니 몸도 마음도 흐느적 거린다. 잘 보던 책도 눈에 안들어오고 그저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다.

김기택 시인의 산문집인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는 그의 첫 산문집으로 그가 2010년 오월부터 1년간 온라인상으로 한국문화예술 위원회에서 임명한 문학 집배원으로 시를 배달한 그 시간을 엮어 만든 책이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에 맞게 시를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느끼는 계절의 온도처럼 시의 온도 또한 다르게 느껴진다. 봄의 시는 어딘가 모르게 생명력이 맥동하는 것 같다면 여름은 푸르름이 주는 탄력이 느껴지고 가을의 시들은 어딘가 모르게 모르익지만 뽀송뽀송한 햇볕의 기운보다는 서늘한 기온이 느껴지는 그늘과 같은 시들이 많이 느껴진다. 겨울은 이보다 더 매섭고 차갑게 느껴진다.

시를 읽을 때 몸과 마음 모두 퐁당 빠지는 그날까지 읽어보겠다고 가을마다 시집을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새 책장 한켠에 가득찼다. 그럼에도 아직은 시가 어렵고,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늘 갈팡질팡 하지만 시인이 들려주는 시가 어렵게 느껴질 때면 그들이 내어놓은 긴말이 가득한 책을 읽곤 한다.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를 통해 처음 김기택 시인을 알게 되었고, 그의 시가 좋아 소개된 시집 <소>도 구입해 읽었다. 시인의 모든 정수가 든 시집을 더 좋아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시를 해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그가 쓴 이 책이 더 잘 읽힌다. 시인의 시선과 말랑말랑한 글귀를 접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포근해진다.

요즘은 저마다 하나씩 들고 다니는 통신기기도 잘 되어 있지만 사람과 사람사이를 더 돈독해주는 역할은 아닌가 싶다. 그저 저마다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말들이 서로에게 쏟아지지만 그것이 예전보다 더 돈독해진 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롯하게 시인이 밥벌이로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 수 없음으로 그는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시를 써왔고 일하지 않는 여백의 시간동안 시를 사랑해오고 시와 함께 그 시간을 보냈던 그 시간을 추억한다. 빡빡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 나의 조그만 몸짓에 호응을 해주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그 누구도 아닌 시인의 눈동자일 것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도 조금 몸짓 조차도 그냥 흘려 보내지 않는 시인의 발걸음과 눈길이야 말로 물질을 물질로만 보지 않고 본질을 관통하여 더 깊은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책상 앞에서 펜과 백지를 준비하고 분위기 잡고 쓰려고 할 때도 시가 써지지 않았다. 시는 머릿속에 든 상식이 아니라 몸속 깊이 숨겨진 내면을 꺼내는 일이고,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나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