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앞뒤.
책 표지 색을 보고 '하늘'이 떠올랐다.
대게 '하늘색' 하면 연한 파란색을 떠올린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는 고정관념인 것 같다. 하늘은 이 연청색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진한 연청색, 바이올렛, 회색, 까만색, 펄이 뿌려진 까만색(별이 빛나는 밤), 오로라가 펼쳐진 초록색, 그리고 책의 표지처럼 노을이 질 때 보이는 붉은색, 주황색 등등 다양하다.
인간관계도 하늘색과 같다고 생각한다. 형태와 체감에 따라 관계 역시 다양하고 복잡한 색을 뿜어내며 시시각각 변하는 것 같다.
(표지 디자이너님이 이걸 의도하신 건가 싶었다. ^^)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의 숙명, 인간관계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출생 시부터 얽히고설키는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지나 무인도에서 외떨어져 살지 않는 한, 인간은 죽을 때까지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브로펜브레너의 이론에서 말하듯 한 개인과 타인 간의 상호 행위 성립은 '나'와 가까운 곳에서 출발한다. 어쩌면 이미 태아 때부터 어머니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인간관계를 경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관계의 영역은 확장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유기체들 간에 관계가 맺어지게 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런 영향은 돌고 돌면서 대면하지 않은 상대에게도 나비효과처럼 여러 가지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렇게 미시적인 거리에서부터 만들어 온 타인과의 인연은 점차 쌓이고 확대되면서 결국 하나의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 형성은 결코 가벼이 여기거나 허투루 할 수 없는 것이자, 벗어날 수 없는 중요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화, 산업화가 시작되고 현대사회에 접어들게 되면서 이러한 '숙명'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단군이래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윤택한 시대를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SNS의 발달로 인맥을 글로벌하게 넓힐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정작 사람들은 마음 기댈 곳이 없어 외로움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며, 고독사를 맞는 독거노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핵가족화로 아이를 한 둘만 낳다 보니 자녀들 역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영수 공부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중요한 협동과 배려를 배울 기회가 없어 왕따 문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게다가 경제적 타격으로 비혼을 선택한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혼족이나 1인 가구의 형태가 증가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넓어진 세상이지만 '관계'의 영역은 점점 더 축소되고 있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척박해지고 계산적이다보니 감정 소모가 심해지며, 그로 인해 소외되는 삶을 살아간다.

'관계'란 이미 원시시대 수렵생활을 할 때부터 인간의 DNA에 새겨진 게 아닌가 싶다. 두레와 품앗이, 계(요즘에도 어르신들 사이에 계 문화가 있긴 함), 향약 등 공동체 사회였던 농경 시절을 오랜 세월 동안 겪으면서 '관계'는 인간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짧은 시간 이룩해 낸 고도의 과학기술과 문명이 사회 시스템의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을 잃지 않고 '관계'의 본질을 유지하기 위해 이제는 시대에 맞춰 '삶'과 '관계'의 밸런스를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지식을 융합한 해박하고 참신한 은유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글 솜씨에 감탄을 했다. 언어의 연금술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양자역학, 클라우지우스의 열역학 제2법칙,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우주 팽창론, 발효, 중력, 인력, 척력, 질량보존의 법칙, 원소 주기율 등 이공계열 이론을 활용한 은유가 문장 하나하나에 녹아져 시같은 느낌이 났다. 간혹 라캉 이론, 데미안 같은 인문계열 영역까지 더해져 작가님의 폭넓은 지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학자가 면밀히 사물을 탐구하듯 관계에 대해 예리하고 통찰력있게 써내려간 필체가 엿보였다. 경험담, 광범위하고 박식한 지식이 한데 잘 어우러져 '관계'라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소재임에도 내용에 빠져들 수 있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시작해 책 곳곳에 나오는 작가님의 심정은, 누구나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러 상처받는 경험을 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아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좋은 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지만 일상에서 평화로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매일 하루가 반복되는 것 처럼 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면식과는 상관없이) '관계'로 인해 사람들은 별의별 사건들과 희노애락을 경험한다.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살다보면 기쁨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 때로는 상대의 가시돋힌 언행이나 배신에 눈물짓거나, 사소한 오해로 여태까지 쌓아 올렸던 관계가 비틀어지기도 한다. 
어제는 적이었던 사람이 오늘은 친구가 되기도 하며, 알고는 있지만 친분이 없던 사람이 어느 새 깊은 사이가 되는 등 살다보면 인간 관계로 인한 많은 일을 겪게 된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겪고도 굳건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사이의 두터운 '관계' 는 그냥 형성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상대방과 상호방향으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한다. 힘들 때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고맙다고 말하는 등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상대에게 예의 없이 굴거나 간섭하려들면 안 된다. 책에서 이야기하듯 어느 정도의 적당한 간격과 균형을 맞춰줘야 좋은 인간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동등함과 존중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긍정적이고 친절한 태도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상황에 따라서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매스컴에서 여러 갑질 사건에 대한 논란이 크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말한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특수계급제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회 곳곳에서 갑질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책 속에서 여전히 신분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구절에 씁쓸하면서도 동의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우월주의와 잘못된 유교사상 신념이 만나 벌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한 쪽의 일방적인 존중이 아닌 서로 상호교환적으로 배려해야함을 어릴 때부터 인식시켜야 동등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위한 인간관계

행복을 위해 '나'를 주체로 살라는 말이 와닿았다.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유아독존으로 주위에 민폐를 끼치며 이기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 살 돼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감을 의미한다.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결국 행복을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협동과 공존을 말로만 외친다. 어떻게서든 남을 내리누르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한다. 학생 때부터 시험점수로 등수를 매기고 비교당하는 환경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 나온 구절들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 몇 번씩 읽었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늙어 죽으면 다 평등해진다. 그런데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아보이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굳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면서까지 성공에 매달리고 싶진 않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모자른 시간, 이제부터라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아부으며 평화롭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결론
1. 감성 돋는 수채화같은 에세이
2. 인간관계에 지치고 힘들 때 읽어보면 좋은 책.
3. 기가 막힌 은유, 박식함, 찰떡같은 통찰력이 엿보이는 인간관계학 개론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