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시작해볼까. 아래 그림을 보고 부자연스러운 점을 찾아보는 일로. 구석까지 조심스레 훑어야 한다. 비밀은 언제나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법이니말이다. 

1) 성모의 인체비례가 정상적이지 않다. 즉 늘어져 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앉아있는 건지 서 있는 건지 모호한 자세가 되어버렸다.

2) 아기 예수의 모습이 탄생의 환희보다는 죽음의 핏기없음으로 표현되었다.

3) 고귀한 성모자의 그림에 방석과 맨발을 드러냄으로써 에로틱함을 전한다.

4) 성모 발치 오른쪽으로 작고 누추한 남자가 두루마기를 들고 서 있다.

5) 사내가 서 있는 뒤편으로 열주(여러개의 기둥)가 보이나 위로 올라가면서 하나의 기둥으로 대치된다.

6) 기둥 부분에서 밖으로 보이던 부분이 다시 위로 올라가 성모의 우측을 보면 커텐처리로 실내로 표현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에 대한 답은 책에서......)

 

성스러워야 할 성모자상의 그림. 그러나 파르미지아니노는 '긴 목의 성모'에서 파격적으로 기존의 관습을 깨고 그 안에 비밀을 심어놓는다. (그 비밀이란?) 이 물음에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문학동네.2005)은 하나의 그림에서 뻗어나가 중세 미술계, 유럽사, 신화를 넘나들며 연금술의 비밀에 다가가는 작품이다.

 

미술사학도 승호는 파르미지아니노의 '긴 목의 성모'의 이상한 점에 끌려 논문을 발표한다. 발표회장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사나이 잭은 그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겠다며 약속을 정하지만, 약속 장소에서 승호가 발견한 건 잭의 시체뿐이다. 한 편에선 범인을 찾고,  다른 한 편에선 승호와 친구 하영, 마이클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그림 이면의 의미를 밝혀나간다.

 

솔직히 책의 구성에서만 본다면 완벽한 작품이라 할 수 없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으나 범인은 초반부터 밝혀진 바나 다름없고, 그를 쫓는 과정 또한 디테일하지 않다. 맨 앞장에서 밝히듯 소설이라기보단 한 편의 논문을 읽는 듯하다. 그러나 작가가 내세우는 주장은 기발하다. 방대한 분량 안에 (비록 겹치는 내용이 많더라도) 여러 정보를 짜깁기해 하나의 흐름으로 풀어낸 점 또한 참신한 도전이었다.

 

소설 속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연금술과 헤르메스로 요약된다. 연금술의 기본 원리는 서로 대립되는 물질을 결합시키는 것. 헤르메스는  서로 다른 두 존재를 연결시키며, 두 개의 반대되는 성질을 결합시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신이다. 즉 두 세계의 통합. 그건 이 세상의 모든 상반되는 원리들을 통합시킨다. 남성과 여성, 죽음과 삶, 물과 불, 공기와 흙, 위와 아래, 하나와 다수. '긴 목의 성모' 속 기둥의 의미 또한 이와 같다. 하나이면서 여럿인 존재, 그러면서 다시 하나로 회귀되는 존재. 신화 식으로 말하면 헤르메스의 자식 헤르마프로디투스이며, 이는 곧 연금술에서의 궁극의 비법 현자의 돌을 의미한다. 즉 연금술의 성공을 그림 속에 담아두었다고 소설은 말한다.

 

묘하게 엇갈리는 현실과 비현실(이라 여겨지는 세계)의 만남이 <헤르메스의 기둥> 안에 살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자신의 작품 안에 헤르메스의 세계를 만들어놓은건지도. 독자들은 시대를 오가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품고 신화의 세계를 만끽하게 된다. 이 지적인 향연!

 

한 때 큰 여파를 몰고 온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같은 발칙한 상상력과 지적 유희를 누리는 즐거움이 큰 소설이다. (참고로 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은 <다빈치코드>보다 먼저 세상의 빛을 본 작품이다.) 다만 미처 조화롭게 짜여지지 못한 이야기의 구성이 아쉽다. 끝을 알기 위해 바쁘게 달려가기보단 페이지마다 숨겨진 수수께끼같은 물음들을 진지하게 대하며 읽는다면 그 맛이 더 진할 책이다. 

 

페스티나 렌테! 천천히 서둘러라! 조급해하지 않아도 답은 책의 말미에서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테니. 답을 알기보단 그 곳까지 가는 과정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