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소설이나 미디어물을 보면, 선과 악의 극명한 대립이 주는 단순 명쾌함과 예측 가능한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캐릭터와 그들의 스토리를 종종 더 비중 있게 다루곤 한다. 그래서 주인공과 대치되는 인물도 예전처럼 한결 같은 악인의 모습만은 아니다. 그들은 이제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고독하고 진솔하기까지 한 입체적 인물로 거듭나고 있다.

저자는 여러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영웅’과 ‘악당’의 개념을 차용하여, 이른바 ‘악당론’이라고 하는 새로운 자기계발 철학을 소개한다. 다양한 작품 속 ‘영웅’과 ‘악당’들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고, 동서양 철학가들의 선과 악에 대한 담론들을 샅샅이 파헤친다. 그래서 그저 악인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릴 수 없는, 그들 고유의 특질과 숙명적이기까지 한 삶을 통해, ‘악(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풀어 나간다.

저자는 여기서 ‘악당’이라는 개념을 더욱 확장시켜 사회상에도 그대로 투영해 낸다. 기존의 질서나 주류 시스템을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체계를 창출해 내고자 노력하는 무리를 ‘악당’이라 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영웅’은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고 유지하는 하수인쯤으로 전락해 버린다. 이런 맥락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의 창시자 ‘제프 베조스’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 창조적 ‘악당’의 좋은 예로 소개된다.

하지만 저자가 시도한 ‘악당’이라는 새로운 개념 정립은 히틀러와 체 게바라에 대한 기타노 다케시의 개인적 견해를 언급하거나,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극중 악인들을 ‘악당’이라고 소개하면서, 다소 혼란스러움을 야기한다. 저자 스스로도 구분하려고 애쓴 ‘악당’과 ‘악인’을 구별해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예로 든 악당들이 과연 ‘악당’일까. 그들은 대부분 ‘악당’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악인’이었다. 그들은 문명을 파괴하고 무수한 인명을 앗아갔으며, 고통을 주었다. ‘악인’이 ‘악당’으로부터 잉태된 것이라면, 과연 그 ‘악당’을 긍정할 수 있을까.

결국 저자는 ‘악’이라고 하는 개념의 긍정적 요소를 모두 담아내기 위해 ‘악당’이라고 하는 범주를 지나치게 확대함으로써,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악인’까지도 포함하게 되는 무리를 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혼란을 차치한다면, 대립적이면서도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선과 악에 대한 철학들을 한데 묶어 냄으로써, 새로운 ‘악당’의 철학을 완성하고, 새로운 인물상을 제시하려는 이 책의 시도는 무척이나 새로우면서 유쾌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