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 ... ... ... ...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s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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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유명한 황무지의 시작이다. 황무지가 왜 동서고금의 명시로 추천을 받는 이유는 시를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극(極)은 극으로 통한다. 폐허를 논함은 천국을 꿈꾸는 것이요, 죽음을 말함은 삶을 말하고자 함이다. 

봄이 싹트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엘리엇은 메말라가는 황무지를 얘기한다. 황무지가 완벽한 황무지 뿐이라면 얼마나 허망한가? 절벽 바위 틈사이의 조그만 흙에서 피어나는 가느다란 이름 없는 들꽃. 이름 없는 땅에 피어나는 들국화. 우리는 절망의 깊은 곳에서도 피어나는 한줄기 희망을 본다. 황무지에서 끈질긴 그 무엇이 보인다.

황무지는 그냥 시가 아니다.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그 무엇이다.

** 살이 트고 목이 말랐다. 잘 잊게 해주는 눈과 마른 구근으로 목을 조금만 축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