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 읽은 소설이다.

꺽어진칠십평생 책한권 읽지않고 살아온내가 작년부터 독서라는 것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밀란쿤데라의 소설로 독서생활 첫 스타트를 끊었다.

허벅지를 찔러가며 겨우 '까만' 글자만 읽으며 모호한 문장에 알수없는 표현들에 잔뜩 겁을먹고 , 소설은 내 체질이 아니구나 라는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린지가 어언 반년이 지나갈무렵 우연히 ' 최윤 ' 작가를 알게 되었다.

동인문학상도 받았다고하고 이상문학상도 받았다하는 그녀가 8년만에 내놓은 '오릭맨스티' 라는 소설.

어쨌거나 나에겐 소설을 읽는 첫 도전이었기에 포기하지않고 마지막 장까지 읽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잡아들었다.

 

생각보다 속도감 있게 읽을수 있었다.

총 17장 중 , 13장 까지는 3인칭 작가 시점의 문어체로 씌어져있어 작가의 세심한 표현과 독창적인 심리묘사를 통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것처럼 흡인력있게 동화될수있었고, 14장부터 바뀐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묘사에서 더욱 사실감있게 읽어나갈수있었다.

때로는 몇번을 되뇌이면서까지 작가가 스케치해놓은 그 풍경, 이미지 , 심리를 고스란히 머리속으로 재연하며, 그 표현들에 압도되어 생활속의 언어로 옮기고 싶은 욕심으로 수첩에 빼곡이 적어보기도 했다.

 

남자와 여자,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나는 어떤 비릿한 내음같은걸 느낄수 있었다.

어쩌면 내 안의 낯설지않은 권태, 의심과 무심, 그걸 극복하려는 게으른 방관, 방향을 알수없는 욕망 , 한켠에 늘 자리하는 불안까지 존재하는 모든 감각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건들과 이야기에 공감이 덫붙여지는순간 소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자도 여자도 그외 양가 모친들도 모두 나의 이해를 넘어서는 캐릭터는 없었다.

그저 나와 주변의 모습들이 그대로 담긴 그들은  흐르듯 머물듯 막연한 미래의 목표와 불안을 안고 살아가며, 가끔 삶의 권태로움으로 인한 아슬아슬한 선을 넘어도 보지만 중심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그렇고 그런 보통의 젊은 부부의 모습이다.

여름 휴가지에서의 그런 참사가 없었다면말이다.

 

사고가 난 시점부터는 사실 묘사는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스토리의 전개가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버렸고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극도로 흥분되는 감정을 참으면서, 그들의 아이 유진이가 벨기에라는 나라에서 심리적인 장애를 갖고 성장하여 가족을 찾아 한국에 오게되고 , 오래전 생사의 기로에서 그와 부모를 갈라놓았던 바로 그 절벽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결말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수가 없었다.

혹시나 그 L씨가 오래전 그 분식점의 단골손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기대감이 들었는데 작가는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으면서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들에게 더 큰 여운을 남기는것같다.

 

오릭맨스티.

뜻을 알수 없는 이 다섯음절은 유진의 성장과정내내 수시로 겪었던 기억상실의 순간, 생사의 순간을 빠져나오며 무의식으로 내뱉은 단어다.

책을 덮을무렵, 뭉클해지는 가슴 - 이건 안타까움과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가 말하는 '블랙홀의 세계'는 태곳적 원시의 기억너머 두살 박이 아이가 온몸으로 감당했던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대한 화인, 그것에 대한 재확인의 과정이었을것이다.

그리고 오릭맨스티라는 단어는 아직 언어를 채 익히지 못한 두살박이 아이만의 단어. 구출의 순간 너무도 강하게 각인되버린 아이만의 안도감이 담긴 단어가 아닐까..

그 느낌이 내 마음에 그대로 담겨져 혼란스럽고도 안타까운 여운에 책을 덮고도 한참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오릭맨스티, 최윤,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