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미즈오씨 연구를 해왔다. 작성된 레포트는 열 네개를 넘어섰고 모두 합치면 사백자 원고지로 환산해 이백사십 매에 달하는 대 논문이다.

화요일이면 그녀는 4교시 강의 를 마치고 서점에서 한동안 책을 훝어보거나 가끔 장을 보기도 한다. 어떻게 아냐고? 주인공의 미즈오씨에 대한 연구는 과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그는 왜 미즈오씨의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일년 전 12월 시점에서는 아직 불완전한 점이 많아서 보다 정확을 기하기 위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결론을 막 내렸을 찰나, 나는 그녀에게 일방적인 연구 중지 선고를 받았다.

한 때 애인이었던 미즈오씨에게 일방적으로 결별 선고를 받은 주인공은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녀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당연 스스로는 스토커임을 강력 부인하고 있다.

그녀는 왜 나같은 인간을 거부했는가?

나의 일상은 초밥집 알바에 하숙집에서의 독서와 사색, 헌책방 순회, 미즈오씨의 연구, 적절한 친구와의 만남 등으로 정리된다. 스스로 선택된 인간이라는 강한 프라이드를 간직한 주인공은 괴짜 쿄토 대학생 아니 휴학생이다. 과잉된 자의식은 오히려 동정심을 일으키기에 쓸데없어 보이는 객기는 오히려 처절해 보이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다.

미즈오 씨와 태양의 탑을 보러갔던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마치 세상의 끝처럼 고요한 평화를 떠올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아마 그에게 있어 미즈오씨는 태양의 탑이 주는 이미지와 비슷하게 영원히 가까이 다가 설 수 없는 미지의 숭고함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히려 종결된 상태에서 남겨질 수 있는 오롯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말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짝사랑에 빠지고 혹은 외사랑으로 안타까워 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해지는 아름다운 기억 속에 그 또한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으로 남는 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연애는 어디까지만 배은망덕한 기쁨이며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이며 가능하다면 남의 눈을 피해 맛보아야할 금단의 과실이다. 그것을 마치 인생에 당연히 열리는 과실인 양 장소를 안가리고 먹어대고 과즙을 남에게 튀겨대는 행위가 얼마나 무어운 죄인지 인식해야 마땅하다.

크리스마스라는 괴물이 달려드는 연말,  에에자나이카 소동이 일어났던 책 속의 거리처럼 (‘에에자나이카’는 ‘괜찮겠지, 아무렴 어때, 좋고말고’라는 의미로 1800년대 일본에서 봉기한 민중 운동이라고 한다) 현실에서도 이런 작은 소란이 일어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나도 그처럼 조금은 외로운 동물이기 때문일까?

 괜찮겠지. 아무렴 어때. 좋고 말고.

수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격려의 말, 위로의 말이 추운 겨울을 조금은 더 따스하게 해주지 않을런지. 나 역시 괜한 상상에 빠져본다.

괴짜 대학생들의 달콤씁쓸한 연애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빈곤한 일상의 이야기에 웃음을 참기는 쉽지 않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