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세상의 모든 책이 불타버린다면 당신이 구하고 싶은 세 권의 책은?!

   '한 페이지 단편소설'과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이름을 알린 서진 작가가  뉴욕 서점 순례에 나선다.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는 51곳의 뉴욕 서점을 둘러보고 쓴 여행 에세이에 소설적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서점 순례 기사를 쓰기 위해 뉴욕으로 갔지만, 궁극의 목적은 10년전부터 쓰려고 했으나 쓰지 못한 소설 『도서관을 불태우다』를 쓰기 위해서다. 서점 순례를 하면서 그는 자신이 쓰려고 했던 소설의 일부를 발견하게 되고,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지 시작한다. 미래에서 책을 구하기 위해 왔다는 제니스, 그녀의 임무는 실제로 도서관을 불태우게 만든 소설 『도서관을 불태우다』의 작가를 찾아 그 소설을 못 쓰게 방해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냥 둘러보았던 서점에 대해서 써보는 건 어때요? 때로는 소설보다 논픽션이 더 픽션 같으니까. 어차피 소설을 쓰기 힘들다면 지금까지 돌아다닌 것을 바탕으로 편하게 써봐요."

   그렇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토대로, 뉴욕의 서점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와 함께 책으로 만들자. 어차피 서점이 없어진다면 기록을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최소한 써지지 않는 소설에 매달리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소설이든 여행기든 에세이든 혹은 그 무엇도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최대한 솔직하게 써내려가는 것이다. (p.155~156)

   그가 소개하고 있는 51곳의 서점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 이런 서점, 저런 문고... 비슷비슷한 이름이 붙여진 우리 서점들과는 달리 작명부터 남다르다. 도서 유통에서 체 게바라 식 게릴라 전법을 쓰고 있는 'Unoppressive Non-Imperialist Bargain Books(반압제적 반제국주의자의 할인 서점)', 사람 이름이 두 개나 들어가 있는 미술 전문 'John McWHINNIE at Glenn Horowitz Bookseller(글렌 호로비츠 서점의 존 맥위니)'처럼 독특한 이름의 서점들이 많다. 또 "Barnes & Noble Bookseller'처럼 모든 책을 취급하는 서점도 있지만 추리문학이나 요리서, 예술서, 여행서 등 특정 분야의 책들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들이 많다. 이 서점들은 서적들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 서점은 A4 종이 한 장에 그린 만화도 재밌다고 판단되면 대신 사서 판매해주는 'The Printed Matter Inc.이다. 시에서 지원을 받아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서점이라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개인 혹은 인디 예술가들의 출구가 부족한 우리나라에도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서점이기도 하다.

   보통 이런 류의 책들 중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감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직접 그곳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그려보거나 공감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진 작가는 문화잡지 「보일라」의 편집장을 지낸 탓인지 각 서점의 느낌을 읽는 이들에게 잘 전달해 주고 있다.

   나는 종이로 만든 책을 사랑한다. 서점에 들어서면 서가에 꽉 차 있는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평생이 걸려도 꽂혀 있는 책들의 절반, 그 반의반도 읽지 못할 텐데 이미 다 읽어버린 것 같은 황홀한 느낌이 든다. 수많은 책들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하게 된다. 무형의 지식과 이야기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어서, 읽기도 전에 경험한 것 같은 그런 착각 말이다. 멋진 표지와 묵직한 장정, 책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과 종이 냄새는 또 어떻고. 나는 책의 내용을 사랑하는 것일까? 책이라는 물건을 사랑하는 것일까? (p.72)

   책을 구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제니스. 그녀는 서점을 돌아다니며 "세상의 모든 책이 불타버린다면 구하고 싶은 세 권의 책"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래서 작가 또한 같은 질문을 서점 직원들에게 던진다. 그들은 자신있게 세 권의 책을 추천하지만, 정작 누군가 그 질문을 작가에게 던졌을 때는 대답하지 못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종이책의 종말은 라디오와 TV가 등장하기 시작한 때부터 예언됐던 것이다. 라디오와 TV보다 더 위협적인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종이책은 살아있다. 하지만 전자책이라는 또다른 매체가 종이책을 위협하고 있고, 그 매체는 그 어느것보다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책을 만들고 파는 곳에서 전자책을 만들고 팔기 때문이다. 비록 종이책의 질감과 냄새는 느낄 수 없지만 책 한권보다 가벼운 전자책에 수 천 권의 책을 담을 수 있다면, 그런 컨텐츠가 무궁무진하다면 전자책으로 갈아탈 사람들이 꽤 되리라. 하지만 제니스의 걱정처럼 종이책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런 날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만약 세상의 모든 책이 불타버린다면 당신은 어떤 책을 구하고 싶은가.

10-043.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2010/05/26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