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에 잠재돼 있는 악의(惡意)를 들여다보다!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 아니면 악한 존재일까?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선한 존재라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악한 존재라 말하기도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환경이 인간을 선하거나 악한 존재로 만든다고도 한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고 우리 또한 어느 누구의 주장이 맞다고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건, 우리 인간이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악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쪽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다카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교살당한다. 일찌감치 범인은 밝혀지지만 그가 사용한 트릭과 살해 동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진짜 트릭과 동기를 숨기려는 범인, 그리고 범인이 숨기고자 하는 것을 밝혀내고자 하는 형사 사이에서의 두뇌 싸움이 책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악의』에서 끝까지 반전을 거듭하며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든 것은 범행 동기다. 누군가에게 살의를 느꼈다면, 그것이 계획적이든 충동적이든 간에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간혹 그 동기에 따라 사람들은 오히려 살인범을 동정하고 살해 당한 사람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다. 사람들은 살해당한 히다카를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배신감 때문에 비난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한번 악한 존재라 낙인 찍히면 비록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의 억울함에 귀기울이기가 쉽지 않다.

   굳이 앞서 언급한 것을 끼워맞춘다면, 사실 히다카는 성선설에 가까운 인물이다. 늘 선의를 품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인은 히다카에게 오래전부터 악의(惡意)를 품고 있고, 그 악의(惡意)의 근원은 알 수 없다. 작가는 그것이 바로 인간 내면에 잠재돼 있는 어두운 이면이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3대 추리소설 작가로 손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금까지 60여권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와로처럼 한 캐릭터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종횡무진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그런 그도 특별히 아끼는 캐릭터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가가 형사다. 현재 가가 형사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총 7권으로, 『악의』는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세번째 작품이다.

   원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특징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는 것이지만, 가가 형사가 등장하면 그 반전은 더욱 기가 막히게 전개된다. 보통 『악인』처럼 초반에 범인이 밝혀지긴 하지만, 트릭이나 동기는 다른 형사나 독자들이 쉽게 눈치챌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사로서의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가가 형사만이 진짜 트릭과 동기를 알아볼 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몇 권 읽어본 독자라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고 해서 쉽게 긴장을 늦추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진짜 사건의 진상은 늘 마지막이 돼서야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젠 거듭되는 반전에 익숙해져서 쉽게 속지도 않을뿐더러 가가 형사가 알려주기 전에 진짜 트릭이 무엇인지 눈치를 챌 정도이면서도, 여전히 그의 작품을 놓을 순 없는 건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추리소설이 읽고 싶어지는 계절이 다가온다. 아직 그의 명성을 듣지 못했다면, 올 여름엔 가가 형사에게 한번 빠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참고로 『악의』에는 가가 형사가 교사를 그만두고 경찰이 되게 한 사연이 소개된다. 가가 형사의 개인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10-053. 『악의』 2010/06/23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