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한번 말한거같은데 오래전 한시를 절구연작으로 자작하다가 춘사에서 그치고만적이 있다. 구상은 하사까지 하였으나 무엇보다 평측을 모른다는 절망감에 더쳐서 구사하는 단어의 괴상함과 표현의 진부함에 따른 자괴감으로 그만둬버렸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끝까지 지어봤더라면싶은 후회가 감돈다. 만약 가끔씩이라도 한시를 지어봤다면 있지도않은 한문실력이 콩알만큼이라도 늘었을지 모르는데. 영시는 책을 읽다가 이게 대체 무슨말인가싶어 혼자서 번역을 해보지만(그럴밖에 없는게 보통의 한국인은 읽지도않을 시여서 어쩔수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 한시는 다른 사람들이 해석해놓은 것을 보고 내마음에 들지않거나 미진하면 나름 직접 해보는 편이다. 번역은 해본사람은 알지만 특히 운문을 번역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산문과는 달라서 운문의 형식미를 제대로 살리기란 보통일이 아닌데 실제로 원문을 다른 언어로 바꾸어 내용을 전달하는 동시에 그 원어의 형식미를 살려낼수 있는 방법이 없기때문이다. 형태면에서 가장 많이 파괴되고 변형되는 장르가 시라고할까. 그래도 영시보다는 한시쪽이 오랜 한자문화권의 영향덕분인지 훨씬 더 가차이 다가오는데 이건 나만이 그런건지 알수는 없다. 영시는 아무리 읽어봐도 그네들 언어의 아름다움이나 운율의 미학을 도통 느끼지 못할뿐만아니라 원문 자체가 머리에도 마음에도 느껴지는 바가 전무한데 비해서 한시는 구절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거나 원문이 (해석을 거침이 없이) 바로 마음에 뛰어들어올때가 더러 있기는하다. 그렇다고 시를 자주 대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재미는 산문에 많이 두고있으나 그래도 문학예술적으로는 그 정제압축의 절제미와 감동으로말할때 산문이 운문을 감히 따를수없다고 본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다시피 시를 잘 읽지도않고 더구나 영어를 추종하는 현대한민국사회에서 한문을 버린지도 꽤오래여서 아는 한시도 별로 없다. 작년에는 장뢰의 추예향 번역에 3개월을 쓴것같다. 난중일기에는 충무공의 시가 한수 전하는데 여름지나갈 무렵에 한국어로 역하였고 몇일전에는 왕효렴의 화판영객증정지작을 옮겨보았다. 

<봄의 강, 꽃, 달, 밤>은 한시중에서 당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있는 책이다. 제목에 봄이 있어서 그러하였든지 이백의 월하독작이나 두보의 춘야희우가 있으려니 홀로 짐작했건만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다들 당대에 내노라하는 시인들이니 이백 두보 백거이 한유 두목 맹호연 이상은 이하 맹교 유종원 왕유가 그러하며 가외로 도잠과 소식이 함께했다. 도잠은 위진남북조, 소식은 북송시대사람이다. 이 책의 약 50여수는 중국의 학교교과서에 실린 당시의 대표작이라고한다. 이중에는 우리도 학창시절에 배운 시도 있고 처음 대하는 시도 있을 것이다. 특히 두보의 절구, 강촌, 강남봉이구년을 기억하는 이가 많으리라. 나는 개인적으로 두보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묘사외에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편이어서 그러한데 아마 작품과 독자도 서로 궁합이 맞는게 따로 있나보다. 중국인들은 두보를 그렇게 좋아한다는데. 장계의 풍교야박도 중국에선 유명한 시건만 나에게는 그닥 오는 바없이 심심한 시라고해야겠다. 그러나 맹호연의 춘효는 상당히 훌륭하고 유종원의 강설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대하는듯 운치가 엄엄하다. 송별시로 유명한 왕유의 양관곡은 어릴때 배웠던 바와 조금도 다를 바없이 감성이 뛰어나다. 객사청청류색신客舍靑靑柳色新 권군갱진일배주 勸君更盡一盃酒..그러나 비할바없기로는 역시 시선詩仙이라 일컬음받는 이백의 장진주將進酒다. 이리도 호쾌호탕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시는 참으로 고금에 드물것이다. 人生得意須盡歡인생득의수진환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天生我材必有用 천생아재필유용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산진환부래 ..자고로 성현은 모두다 쓸쓸했었지. 오로지 마시는 자만이 이름을 남겼었지..將進酒장진주 君莫停군막정 與君歌一曲여군가일곡 呼兒將出換美酒호아장출환미주 與爾同銷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 훗날 소동파가 도한교수라 폄했던 한명인 가도의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도 있는데 갠적으로 사랑하는 소품이다. 맹교의 묘기로운 시가 더 취향이긴하나. 이책에서 눈길이 간 시는 이하의 안문태수행이니 한유가 버선발로 나가서 맞이했다는 일화가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雁門太守行 

   黑雲壓城城欲？ 흑운압성성욕최

   甲光向日金鱗開 갑광향일금린개 

   角聲滿天秋色裏 각성만천추색리

   塞上燕脂凝夜紫 새상연지응야자

   半卷紅旗臨易水 반권홍기임역수

   霜重鼓寒聲不起 상중고한성불기

   報君黃金臺上意 보군황금대상의

   提携玉龍爲君死 제휴옥룡위군사

이책에는 각 시마다 한자를 새기고 어휘풀이를 해놓았으며 번역과 설명이 있고 간체자와 중국어로도 함께 학습할수있게해두었다. 나야 간체와 중국어를 모르니 뒷부분은 소용이 없지만 중국어를 알거나 현재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클것같다. 저자는 시를 낭송하기를 권하고있는데 낭송을 좋아한다면 한시낭송도 하나의 멋스러운 취미가 되지않을까. 갠적으로 낭송커녕 말하는것조차 싫어하는 나같은이에겐 해당사항 없지만. 한시는 크게 고체와 근체가 있는데 예전에는 율격의 근체를 좋아했으나 지금은 고체가 은근히 비정형의 매력을 풍기는듯하다. 암기는 굳이 시전문을 외지 않더라도 마음에 들어오는 한두구절만 외워도 그 시의 운율과 언어와 내용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정서를 맑게하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한다. 작년에 북송인 황정견의 청평락을 대하고서받은 감동은 말로 다할수가 없다. 한시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이유는 그를 가까이하지않아서 그럴것이다. 익숙하지않으니 낯설고 낯서니만치 그 아름다움과 정수를 어찌 한올이라도 맛볼수 있겠는가. 시같은 언어예술이 지금은 단순히 옛것을 즐기는 호사가적 취미에 그치는듯하여 아쉬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