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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소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소설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역사소설만은 꾸준히 읽어왔다.

이러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들 중에서 '김탁환'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하나의 단어와 함께 기억된다.

그것은 바로 '성실'이다.

그의 소설은 그저 작가의 순간적인 취흥에서 비롯되어

일필휘지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대상에 대한 오래고 방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땀 한 땀 따여진 역작이다.

그의 대표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하드라마 <불굴의 이순신>은,

오백년 전의 인물을 마치 이 시대의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2014년 상반기 최고의 역사적 인물은 단연 '정도전' 이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를 통해 우리 역사 속에도

현실에의 깊은 절망감 속에서 마냥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여

마침내 성취해 낸 위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2부작 <혁명>은 작가가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써 내려간 글을 통해

드라마 속에서 빠르게 지나쳐간 사건들과 인물들을 복기하게 해 주는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드라마의 내용은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해석들로 인해 드라마 속에서 규정되어진 일방향이 아닌

'입체적인 재구성'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이성계가 낙마하여 크게 다친 날로부터

이방원에 의해 정몽주가 참살되던 두 주 간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정도전의 회상이라든지 편지 등을 통해

과거의 일들 또한 씨줄 날줄로 엮어가는 다소 복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을 어렵게 하지만,

오히려 그저 옛날 이야기 정도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서도

여전히 깊은 시사점이 있음을 말해 주기도 한다.

특히 사람들을 그저 적군과 아군으로 구분지어 적대시하는

애송이 혁명가 이방원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원숙한 혁명가로서의 심모원려를 느낄 수 있다.

나에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내용은

혁명가가 느끼는 절망감에 관한 구절이었다.

혁명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보다도

현실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가지는 사람이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삼봉 정도전.

나라도 뭣도 아닌 망해가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꿈꿔 온 청사진을 바탕으로 새로운 왕조를 열어간,

한민족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