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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모든 걸 걸고 미치기. 자신의 논의를 선형적으로 완성해나가기. 글이라는 형상을 자신의 다재다능함과 박학함이라는 질료를 사용하여 완전무결하게 완성하기. 따라서 글을 쓰는 작업은 그 사람의 교양 수준과 지능 수준 그리고 숨겨진 천재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글쓰기라는 작업은 한 개인의 두뇌를 전부 사용하는, 그러니까 한 영혼의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사용하는 총괄적인 작업이다. 글쓰기의 수준 여부에 따라 그의 삶의 깊이를 짐작해볼 수 있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자신의 학문 수준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며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가야 하는 ‘내적 필연성’을 그는 거부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의 정신적인 저변에 희미하게 내재돼 있는 것으로, 이 추동력의 지향성을 연쇄 폭발 시킬 때 그의 필사는 하나의 예술로 남을 수 있는 것이리라.

그가 쓴 글로써 그의 정체성과 세게관을 지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격을, 그의 질과 다양한 것을 망라하는 양을 우리는 그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이란, 한 선비의 지조와 풍격을 나타내는 일련의 예술적인 표상이다. 그의 변모와 변용의 편력도 그가 써내려간 글의 기록의 선線을 따라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하기야 글도 하나의 ‘기술’이라 지독하게 독서하고 오랫동안 필설한 사람의 기품을 일반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즉 학자의 정신능력을 고작 직장인이 따라잡기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학자 중에서도 학자, 이른바 천재적인 학자들의 필설능력은 그 누구도 이르기 힘든 지고의 영적 표양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러한 한 세기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적인 지성’을 경외의 눈길을 던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작업들이 생각보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사유가 보기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이런 혹독한 작업은 명백히 ‘고매한 영혼’이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영지주의적인 날빛이 하나의 위대한 표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사상을 개진하는 것은, 극단적인 절제와 시적 기법을 사용한 순문학은, 작가나 사상가의 주도면밀함과 정치함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고난이도의 ‘고봉’과도 같다. 마치 우리가 아스라한 역광의 직사를 눈을 뜨고 보래야 그 눈부심 때문에 볼 수 없는, 모종의 역설적인 세계가 여기 있는 것이다.

오직 학술적인 경험만이 글의 실력을 높일 수 있다. 주관적인 경험이나 요컨대 영화 감상이라든지 삶의 경험이라는 것은 사실상 필력의 상승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력은 전적으로 텍스트의 섭력과 활용능력에 그 근거를 이루고 있다. 내가 실수했던 점은 이런 텍스트 가외의 분야가 내 정체의 비약과 고무를 완성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예단한 것이다. 물론 시나리오 작업이나 철학적인 창조성은 주관적인 경험을 두루 섭렵하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 골자는 언제나 질료의 변증법적 전개과정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텍스트라는 추상적인 것은 현시대에는 접근하기가 매우 지루하고 집중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텍스트는 자극적이지 않으며 대중의 시선을 끌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인식에 생각할 시간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좀 더 눈에 띄고 말초적인 것을 원하는 경향이 있고, 현대의 대중문화는 이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의 텍스트 경시는 곧 그들의 학문 수준을 밑바닥까지 추락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심화되어 더 이상 그들이 텍스트로 회귀할 일은 없을 듯 보인다. 이제 전문적인 텍스트는 학자 아니면 읽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교양을 발로 차 버렸다. 알맹이 없는 대중문화가 오직 세상을 표류하고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천박한 것에 자주 노출되면 텍스트를 읽을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언제까지 이런 오류를 두고만 봐야 하는 것인가. 이제 극소수만이 철학을 진지하게 사변적인 층위로 여기는 시대에 뭘 더 바래야겠는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엘리트주의자로 경도되는 길로 빠지지 않고, 대중을 계몽시키려는 사명감을 갖고 오늘도 학문에 매진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내 글쓰기만이, 그 정신적인 과정만이 나의 본질을 유지시키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기본 잣대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공명심을 갖고 있는 이미 고색창연한 분야가 된 이 자리를, 한층 더 빛낼 각오를 하고 임하는 것이다.

- 양주시 개인의 서재에서 ‘미석 박준석’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