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보다 즐기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정도 절제가 기본 준칙이 되어 행해지는, 즐거움의 역치의 조율을 ‘산심유곡’에서 ‘범여일여’의 정양하는 마음으로 섬세하게 하는 것은, 요컨대 내 삶을 직조하는 하나의 기둥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정신을 즐겼지 육체를 즐기지 않았다.

 

삶에 대한 퇴폐를 인정하지 않고, 나아가 시작의 근원을, 나의 원질을 뿌리 채 알려는 마음가짐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탁마해나가면서 나는 심인적인 모종의 ‘아우라’를 체현하는 하나의 ‘재현’현상을 조심스레 받아들이고, 궁극적으로 ‘무명’을 탈피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나를 둘러싼 세계의 삼라만상이 나를 규정지우는 것을 차마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자존심이 강하고 남에게 지기를 싫어한다.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고, 상대방에게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생을 살아왔다. 이를테면 나는 하나의 투사였다. 그러나 이런 삶이 빈궁에 처하는 건 불 보듯 빤한 일이고 그런 연유로 나는 괴로움을 겪었으니, 대가를 치룬 셈이다. ‘유위변전’하는 우주에서, 좀 더 세밀하게는 이 지상에서 나를 주조하는 하나의 원칙은 지식을 텍스트에 근거하여 학술적으로 펼치는, 즉 연역적인 접근으로써 나오는 데로 필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있는 그대로 나의 말을 적었다. 사르트르가 ‘말’을 공경했듯 나 역시 스승의 가치 지향성을 본받아 말의 본질을 구명하고 세상의 진실을 언어로써 해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구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 혼돈에 쌓인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이행하는 방법론을 찾기 위해 나 자신을 기투하고, ‘인간 실존’의 의미를 탐색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점진적인 학문의 수양을 행한다. 따라서 나는 거칠 것 없이 모든 지식의 각 분야를 망라하여 총체적인 지성의 수립자가 되기를 원하며, 그 누구도 나의 지성을, 나의 학자로서의 명예를 넘보지 못하게 하나의 ‘비전’을 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공부해도 ‘메인스트림’, 즉 주류에 도전할 정도로 실력이 갖춰지지 않는다. 이런 불만은 나를 자포자기의 상태로 몰아넣기도 하고, 주야장천 오로지 정양과 사색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하기야 나의 불면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정신병과 신경증을 극복하고 의식지평을 확장하기 위한 철두철미한 계획을 짜야할 ‘내적 필연성’을 내부에서부터 느끼고 있다. 이것은 당위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생각하고 고로 존재하려면, 즉 ‘코기토’를 체현하려면 무엇보다 지식 간의 상호조응의 변증법적 순환 작용을 ‘자타공인’해야 하는 ‘명멸성’을 요구받는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거기서 모종의 개연성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리라.

 

밤은 점점 검어지고 나는 말이 없어진다. 침묵만이 공허하게 서재를 감싸고, 나는 조용히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운다. 연초는 ‘레드 버지니아’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의 입학을 위해, 나 자신과의 싸움을, 따라서 죽음보다 더한 정신의 고통을 겪고 있다. 까닥하다가는 백치가 될 수 있는 위험한 관념의 모험 속에서 나는 철학함을 공고하기 위해 전심전력 책에서 질료를 모으고, 이처럼 형상으로 빚어내기 위해 내 ‘예술혼’을 불태운다. 하기야 ‘철학적인 글쓰기’의 근원은, 그 본질은 재론의 여지없이 필력과 박학함, 그리고 다재다능함에 달린 것이리라. 일관적으로 총체하자면, ‘천재성’의 문제일 뿐이다.

 

변격과 그로테스크를 지향하는 대중문화가 판치는 시대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교양은 왜 죽었으며 그 근거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속세를 더 속세답게 한 모든 불행의 씨앗은 학문과 예술을 좌시하면서부터 벌어진 일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진짜배기 예술’을 말하지 천박한 대중문화의 ‘그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여러모로 대중문화의 저열성과 천박성 그리고 반복성과 비차이성에 대해 경멸감을 가지고 있다. 지식의 대량융합이 가져온 잡식과 잡문의 확대 역시 인문학의 몰락을 가져왔다. 지성이 아웃사이더로 전락했고, 일벌레들만 도처에 활개를 펴고 돌아다니는 꼴을 목도하게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말세의 절정에 달한 것에 다름 아니며, 이를 구할 방도는 오직 ‘메시아’의 뜻에 달렸다. 그런데 그 메시아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 이미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몰락이란 이미 필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저속한 문명으로 돌진할 것이고 다시금 원시시대로 환원할 것이다.

 

이 글은 어떤 주제도, 목적의식도 없이 그저 무의식을 바탕에 깔고 담론적인 정초작업을 하는 것에 진배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 어떤 영지주의적인 힘을 발견하기란 힘들 것이다. 물론 글이란 다의적인 것이라 읽는 이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잡문에 ‘영성’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한다. 나는 불면의 밤에 이 글을 작성하는 것뿐이다. 글은 글다워야 하겠지만 이 글은 그저 하나의 ‘끄적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오로지 의식의 흐름을 쫓아 변변찮은 재주로 언어예술의 창조를 모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글에도 모종의 ‘산문정신’이 담겨 있다는 걸 당신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산문정신은 무엇보다 작가의 열정에 넘치는 정신없는 글쓰기와 그 진행의 속도감에 달려있다. 물론 체계를 명백히 세우는 것도 산문의 역할이겠지만, 이런 틀을 깨는 막가파식 글쓰기도 나름 의미 있는 몸짓이라고 난 단정한다. 그리고 이것은 예단이 아니라 확정정인 사실을 판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