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몇 페이지만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마자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주디스 버틀러의 이름을 주디 버틀러로 기억하고 있을 만큼 무식해서 주디스 버틀러가 젠더와 정치에 관한 책을 종 종 몇 권 펴낸 학자라는 것만 알고 있는 알고 있던 나는 단지 유명한 여학자라는 이름의 액면가에 그저 이 책을 읽어보고자 서평단에 신청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우(愚)는 그대로 나에게 돌아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찾아온 이별이 가장 견디기 힘들 듯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읽는 책은 정말 대책이 없었다

이런 정치학과 인권이 결합된 책은 좌파진영의 책이건 우파진영의 책이건 그간 쭉 관련 도서와 연구 분야를 줄기차게 관심을 갖고 읽던 사람들이 읽는 것이지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무식자가 그저 타분야로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독서를 시도한 모험은 보기 좋게 혼란과 몰이해라는 수렁만을 만나게 했을 뿐이다

즉 준비된 자만이 독서를 할 수 있다

라는 격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소설이나 수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설도 골격에 해당하는 사상이나 주제에 대한 개념을 요할 때도 있고 에세이도 관련 상식이 있어야 더 잘 이해할 수가 있는데 이 책은 음식으로 치자면 돌과 같이 단단한 흑빵처럼 건조하고 고구마처럼 답답한 지적인 단련을 해대는 책이 아니던가

참 한심하게도 나는 이런 넋두리로 지금 서평을 쓰고 있다.....후우아 후우...

박탈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말하는가 또 주체성이라는 개념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이런 가장 기초적인 난제에서부터 나의 여행은 좌절되었다

이른 바 세간의 개념이 아니라 전문적이고도 특정한 특수용어로서 쓰여지는 단어들의 낯선 의미망이 나를 그물처럼 옭아매고 백치처럼 멍청한 독자가 되게 해버렸다

지금 전세계에서 좌파진영이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포퓰리즘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각국에서 우파 그것도 어떤 나라들은 극우 세력이 준동하는 그런 상황이다

좌파는 선인가? 우파는 악인가?

혹은 그 반대인가?

그런 이분법으로 세상을 구획 정리하기 위해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이 책이 좌파의 위기를 조망하는 책이지만

다만 오르한 파묵의 말을 대충 기억에 떠오르는 대로 인용하자면 '세상의 모든 불합리에 대항하는 것이 좌파이다'라는 그의 육성이 가르키는 지점을 바라볼 때 이 책은 지금 이 세기에 글로벌의 지표위에서 벌어지는 저항과 그 인정의 현상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투쟁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욕이 나올 정도로 어렵게 다루고 있다

왜 그런 박탈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박탈이 수행성의 획득 여부에 따라 그 개인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에 대해 심히 골치가 아플 정도로 전문적이고 어렵게 써내고 있어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정치적인 저서에 관심이 없는 라이트 북리더는 그간 자신이 읽어온 소설과 만화와 에세이가 얼마나 은혜롭고 친절한 책들이었는지 그 책들에게 눈물이 흐를 만큼 깊은 감사를 하게 된다

(이 책의 내 서평은 아무런 알맹이가 없다 아 심히 부끄럽고 이 책의 출판사에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