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반대말은 벌 이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가 그것을 진정 반대어로 생각하고 병렬로 나열한 것일까?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벌을 주는 것이 '죄'다.
벌을 주는 것과 벌을 받는 것.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은 그래서 죄다. 상대에게 벌을 주므로.
죄와 죄책감.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란 우리의 모습일까 요조의 모습일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라면 요조는 인간실격이 맞다.
그렇지만 요조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면 우리가 인간실격이다.
도무지 인간으로서 실격되지 않으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순수가 악이 되는 시대.
요조는 자신의 순수성을 숨기고 타인의 노예가 되어 살았다. 상대방이 나의 순수성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들과 같은 존재라고 여기도록 마음에도 없는 농담을 하고 익살을 부리고 장단을 맞췄다. 인간이 되기 위해. 그러나 그의 순수성은 때로는 너무 잔혹하게 느껴진다. 저 여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저 여자의 노예가 되기 위해 결혼을 하고, 그 여자가 강간당하는 (불륜일지도 모를) 모습을 목격하고도 감정의 동요는 없다. 사랑이 없으니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적 행동 같은 것도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는 좀 충격이었다. 마치 요조를 가운데에 두고 타자들이 끝없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광기어려 보인다. 그리고 침착한 요조가 있다. 미쳐 돌아가는 인간을 관조하는 요조가 있다. 비극은 그가 같이 미치지 않았다는데 있다. 여전히 순수하고 여전히 타자에 동조하지 않고 여전히 타인의 노예라는데 있다.
그는 결국 이십대의 나이에 노인의 얼굴을 하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채로.
그런데 과연 그는 인간실격일까?
끝까지 순수를 가지고 떠난 그는 우리를 실격시킨 것은 아닐까?
인간답지 못한 것은 누구일까.
부적응, 방황, 비굴함, 나약함, 가식, 체념.
어느 하나 나의 모습이 아닌 것이 없었다.
때로는 요조가 나의 모습이었고 때로는 그의 아비가, 형이, 친구가, 노비가 나의 모습이었고 그의 작부와 부인과 애인이 나의 모습이었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 다 이렇게 모두의 모습에서 저마다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 모든 타자들은 결국 나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러하니 세상 사람들을 연민의 정을 가지고 바라볼 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도 미워하는 타자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 있으므로. 요조처럼 혼자 순수를 가지고 버려지는 것은 원치 않으므로.
- 직소(直訴)
가롯 유다 : [인명]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 예수를 은화 30냥에 제사장들에게 팔아 넘긴 인물로, 예수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후회하여 자살하였다.
화자와 독자는 잠시 가롯유다가 되어본다. 그의 심정을 살펴본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그는 왜 예수를 은화30냥에 팔아 넘겨야 했을까? 그의 동기는 무엇일까. 궁금해 했던 적도 없다.
그냥 그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악하게. 약하게. 나는 선하니까 그를 헤아릴 수 없을 거라 우리는 자만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는 순간 나는 가롯유다가 된다. 나는 악하게 태어나지도 그렇게 운명 지어지지도 않은 그저 너이고 나이다.
그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스승을 왜 팔아 넘겼을까. 그가 나를 버리기 전에 너무도 사랑하는 그의 손에 내쳐지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버린다.
그렇게 승리감에 도취 된 적 누구나 있지 않을까?
내가 잘리기 전에 회사에 사표를 낸다, 내가 지는 모습을 확인하기 전에 게임에서 져준다, 그가 헤어지자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헤어진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재.
버려지지 않기 위해 버리는 것.
픽션이지만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래본 적 있었던 나의 모습과 유다의 모습이 겹쳐져서일 것이다.
어느 철학자가 그랬다.
자살은 이기적인 선택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서 생을 버릴 수는 있다. 그럴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사랑하는 스승 예수를 배신하고 그의 사형이 선고됨에 따라 자살하게 된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한 번도 이해해보려 하지 않은 사람을 이해해 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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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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