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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장을 넘기자마자 드는 생각은 이거였다.

"정말 싫어 죽겠는 모양이네..."

온갖 권태와 부적응과 그저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차 있는 사람.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진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어이가없다. 아무리1935년생이 젊은이인 배경이라지만 기형아인 아이의 아버지에게 해부를 권유하고 차라리 죽는편이 낫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다니. 이 의사, 이 사람 제정신인가?

눈부처가 없다.

버드의 눈에도 아기의 눈에도.

서로 사랑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다 몰라도 그 둘만은 알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모습이 서로의 눈에 절대로 비춰질 수 없음을.

버드에게 이것은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 이었다.

버드가 남편의 자살을 몸으로 겪은 히미코를 오롯이 알 수 없듯, 누구도 버드를 오롯이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온 몸이 탈진해버린 듯한 기분이다.

버드의 내적갈등이 치열하고 치열하고 또 치열해서 나까지 힘들어지고 말았다.

인간의 밑바닥은 과연 어디일까? 극도의 이기주의란 무엇이며, 그 모습이 나에게 없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사실은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닌 척 연기를 하고 사는 것 뿐이지않나.

버드는 일상의 권태에서 자유롭고자 아프리카를 갈망했지만, 그런 그에게 주어진 것은 뇌헤르니아로 태어난 어린 자식이다.

날아가기에는 조그마한 알도 버거워 죽겠는데, '자식'이라는 타인이 족쇄를 채운셈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 없이 그의 아들이 죽기를 바란다. 의사로 하여금 단물을 먹여 조금씩 죽어가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끝내 아들을 수술시키고자 결심을 하고 그의 결심과 행동은 모든이들의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가 아들의 수술을 결심한 것은 부정(父情)이 결코 아니었음에도.

버드는 위로받고자 하는 작은 새였고 일상에 탈진해버린 작은 새였고 앞 길을 몰라 갈팡질팡 하는 작은 새 였다.

상처받기 쉽고 추락하기 쉬운.

그가 몇날며칠을 계속해서 술을 마시며 몸을 망가뜨리는 과정은 그의 연약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나도 버드처럼 참 나약하기 짝이 없구나 싶다.

어떤 일이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고 극도의 이기주의를 발휘해서 모든 공은 나에게로 돌리고 싶어하고 그럼에도 주변의 찬사는 갈급하고, 하지만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누가 버드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어린 자식이 죽었으면 했던 그 여리고 연약한 마음을 누가 욕할 수 있는가.

버드의 어린 아들을 제외하고는.

철학박사 '강신주'는 이 소설을 읽는 도중에 너무도 괴로워서 중간 중간 담배를 태워댔다고 했다.

나는 태울 담배는 없었지만, 가만히 책을 배 위에 얹어놓고 깊은 한숨을 쉬곤 했다.

아. 더럽다. 정말 인간이란 별 거 아니다. 가면을 벗은 인간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정말로 읽기 힘들어지는 책이 나타나면 진정한 독서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내게 그런 책이다.

나 또한 '개인적인 체험'을 하게 만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