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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시리즈 세 편 중 두 번째 이야기다. <대지>가 젊은 왕룽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라면, <아들들>은 왕룽의 세 아들, 특히 막내 왕싼의 인생을 집중 조명한다. 땅을 사랑했던 왕룽은 막내 왕싼이 자신의 업을 이어 농사꾼이 되길 원했다. 틈만 나면 왕싼을 이끌고 농사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땅에 대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전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왕싼은 좁은 땅에 코를 박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천하를 평정할 원대한 꿈을 안고 군인이 된다.

당시 중국은 황제가 물러가고 물리적 힘을 가진 자들이 할거하는 때였다. 힘을 가진 자가 물질도 권력도 명예도 얻을 수 있는 난세였던 것이다. 주인공 왕싼은 성실함과 상대방을 압도하는 포스로 급승진하여 결국 자기만의 군대를 거느리는 장군이 된다. 그는 스스로를 다른 비적들과 다르다고 자부했다. 그에게는 승리에 도취하여 안주하거나 주색잡기와 향락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자제력이 있었다. 또한, 있는 자들의 아첨과 뇌물에 현혹되지 않고, 가난한 서민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코자 하는 공정성이 있었다.

왕싼은 이름난 도적떼도 소탕하고, 관군으로서의 자격도 얻고, 사랑도 하고, 배신도 당하는 인생의 수레바퀴를 돌다가 결국 아들을 얻은 뒤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흥미롭게도, 그는 아들을 훌륭한 군인으로 키우고자 백방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아들은 조부 왕룽과 같이 땅을 사랑하는 농부dna를 타고났다. 아들은 왕싼이 어릴 때 왕룽에게 그리하였 듯이, 반항하기보다는 자신을 억누르며 아비의 뜻을 따르지만, 결국 왕싼처럼 아비의 뜻에 맞서 그동안 꾹꾹 참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낸다.

<대지>에서 왕룽이란 한 사람의 일생만 읽어보아도 내가 아직 겪어보지 않은 중년과 노년의 삶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왕싼이란 또 한 사람의 일생을 추가로 관찰하는 호사를 누리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한다.

하나는, 젊을 때의 패기와 열정은 어느 땐가 수그러들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연륜과 함께 쌓인 지혜와 사람들을 끌어안는 포용성일텐데, 사실 왕싼에게서 그러한 미덕을 찾기는 어려웠다. 물론 이른 나이부터 정의감과 절도있는 삶으로 백성들을 다스림으로 당시에 보기드문 리더상을 보여주었기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만, 결국 개인적으로 그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움으로 항상 쓸쓸했던 사람이었다. 왕룽은 말년에 이화와 천치딸이라도 마음 줄 사람이 있었지만, 왕싼은 오로지 아들만 바라보았기에 그에게서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 그가 더 애처롭고 작게 보였다.

둘째, 자식의 인생 만큼은 부모 마음대로 안된다는 진리가 두 세대를 걸쳐 일괄되게 묘사되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을 마지못해 따르는 인생은 타다 만 촛불처럼 열정도 에너지도 사그러든다. 부모가 자식이 꿈을 발견할 틈도 주지 않아 결국 그들이 그저 정처 없이 표류하는 듯한 삶을 사게 되는 예들이 책에서도 나오는데 바로 왕룽의 큰 아들 왕따(大)와 왕따의 큰아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넘치는 재물을 물쓰듯 쓰며 부유층의 소비문화를 누리는 데서 삶의 이유를 찾게 된다. 생산적 인생이 아닌 소비적 인생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생산적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한 데 있다.

마지막으로, 왕싼이 오랜만에 형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과 비교하는 대목이 있다. 향락을 일삼는 큰형과 돈 벌 궁리만 하는 인색한 둘째형은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제쳐놓고, 자신은 원대한 꿈을 가지고 백성들을 위해 정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라며 스스로 우쭐해한다. 그들의 아들들 또한 업신여기며, 자신의 아들은 이 다음에 훌륭하게 키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여기서, 나는 움찔했다. 작가는 이 대목에서 전지적 관점으로 왕싼의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놓았으나, 첫째 왕따와 둘째 왕얼 또한 동시에 왕싼과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왕따는 왕따대로, 왕얼은 왕얼대로 그들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그리고 그 다양성 만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또한 다르다. 내 가치관에 충실한 나의 세계에서는 내가 제일일 것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들을 우리 모두가 저마다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의 시각이 편협한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