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소설에서 멀어졌다. 어릴 땐 소설책에 손이 먼저 갔었는데, 요즘엔 논픽션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모든게 점점 더 빨리빨리 돌아가는 사회에서 나도 성격이 급해진 것인지, 기승전결 전개되는 호흡이 긴 소설이란 장르가 부담스러워졌다. 읽다 포기한 소설이 근래에도 몇 권이다. 

 그런데, <대지>는 달랐다. 한 번 읽기 시작해서 손을 놓지 못해 새벽 2시까지 읽다가(원래 11시면 자는 내가), 너무 늦은 시간인지라 중간에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청한 잠은 안오고 그 다음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하고 또 궁금해서 엎치락 뒤치락 하다 다시 불을 켜고 3시 반까지 완주해버렸다. 물론, 어릴 때부터 중국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제3문화에서 자란 다문화가정 자녀인 저자 펄 벅에 대해, 그리고 중국문화에 대해, 내가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다른 소설책과는 달리 구미가 더 당겼을 수도 있다. 

 근대문물과 전통문화가 충돌하면서도 공존하는 근현대사는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에게도 격동의 시대였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 중국은 당시 잦은 전쟁과 아편 반입, 신문물 도입 등의 혼란 속에서 근현대사를 숨가쁘게 써나가고 있었다. 이 때를 배경으로 가문 대대로 농사꾼인 주인공 왕룽이 등장한다. 

 소설 초반부의 왕룽은 젊고 성실하고, 농부로서 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씨를 뿌리고 거두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기근, 전쟁, 도적난 등 여러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 그와 아내 오란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장성하고 왕룽이 중년을 지나 노인이 되기까지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한 편의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 사극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그림들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땅(대지)"는 왕룽에게 영원한 안식처요, 꿈이요, 삶의 목표와 열정이었다. 그가 부유해지면서 땅에서의 "노동"을 멈추었을 때, 삶이 톡톡히 꼬이기 시작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적 풍요로움은 자칫 우리 삶의 목표와 열정, 삶의 이유를 잊어버리게 한다. 왕룽도 그랬었고,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실수를 범하지 않았던가. 말년에 초심을 잃고 과오를 범한 선인들을 떠올려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본다. 나의 삶의 이유, 나의 '대지'를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