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힘든 말

간단한 수필과 만화의 결합으로 역시 엄청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일본과 우리의 문화 차이가 있구나 생각이 들었고, 소제목마다 아래에 그 말들이 일본어로 써있어서 일본어를 배우면 참 좋겠다는 쓸데 없는 생각도 책 읽는 동안만큼은 했다.

알고는 있는데 막상 자신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과 왜 그런지에 대한 글이었다. 블로그에 쓰면 딱 어울리는 느낌의 구성. 매일 하나의 말에 대한 글을 쓰고 아래 만화를 덧붙이는 형식이 딱 어울린다. 작가는 나랑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 조금 세상에서 거리를 두고자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관계의 사람들이 있고, 돈을 버는 직업이 있고, 사회 생활을 위한 어느 정도의 깔끔한 관계는 맺고 있고, 하지만 엄청 끈끈함은 여기 선별된 단어들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과한 관심과 관계맺음은 부담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경우에는 태클 거는 느낌까지 받았다. 귀를 뚫지 않는 이유로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몸’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극중 대사를 내뱉듯 유난을 부리는 건 부끄럽다’고 표현한 경우. 말하는 맥락에 따라서 강조하는 표현으로 충분히 쓸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자신의 몸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말은 역시 사람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나에게 이런 말, 즉 알지만 사용하기엔 낯부끄러워서 잘 내뱉지 않는 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일단 패션에 관한 말은 알아도 잘 쓰지 않는 편이다. 나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얽히고 싶은 분야가 아니라 그런 것 같다. 당연히 비속어도 그러하다. 알지만 쓰기에는 너무 애같고, 천박한 것 같아서 안쓰게 된다. 혹은 지나친 줄임말도 그렇다. 구체적인 예가 뭐가 있을지는 생각해보아도 안떠오른다. 언젠가 다른 글을 보다가 ‘이런 단어 잘 안쓰는데? 나는 못 말하겠다.’ 이런 식으로 떠오르겠지

‘카페’: 나는 카페를 많이 쓰나, 커피숍을 많이 쓰나? 생각하는 동안에는 둘다 잘 안쓴다고 생각했는데 보통은 커피 마시러 간다고 말하니까. 여기 앉아서 엄마랑 통화하는 중에 ‘더워서 카페왔어’라고 했다. 고민하던 중이라 의식적으로 카페와 커피숍 중에 골라 말한건가? 평소의 나는 어떤 말을 쓰는지 모르겠다.

가정환경이 좋다, 나쁘다: 나는 자주 쓴다. 직업 때문인가?하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부자이거나 가문이 좋거나 이런 관점이 아니다. 가정환경이 나쁘다는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으로든, 사랑과 관심으로든.

‘그 옛날 좋았던 시절’: 작가는 젊은 세대와의 완전한 결별, 마음속으로 자기를 어른이라고 인정하는 자세. 용기있다고 평가한 표현이다. 반은 동의. 나의 젊은 시절과의 완전한 결별, 그렇지만 나를 어른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늙었다고, 나이 먹었다고 인정하는 것일 뿐. 여전히 서운함이 남아 있는 표현이다. 할 때마다 그립고, 서운한 말이다. 나에겐 ‘젊었던 때’, 혹은 ‘대학생 때’로 바뀌어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뭔가 내가 나이들었고, 확실히 그 시절은 끝났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표현이다. 이것과 연결해서 ‘아줌마’라는 표현. 나이 38살이 되니 자신이 아줌마로 보일텐데 자기가 아줌마란 말을 쓰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이거 왠지 공감간다. 나도 어느덧 아줌마보다는 아주머니를 더 쓰게 되었는데 아마 내가 아줌마로 보이는 것을 인식하고 나서 좀 덜 부정적인 어휘를 끌어다 쓰게 된게 아닐까?

청소년들은 욕을 엄청 쓴다. 어느 나이에서부터 안쓰게 되는 것일까? 직장에 다니면서? 하지만 나이 들어도 욕을 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집단 자체가 뭉치지 않으면 쓰기 어려워진다. 언어는 정말 묘한 것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