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 티베트, 미얀마, 태국, 중국, 홍콩,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기록한 작가정신에서 나온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방랑>은 묵직한 울림이 있다.

먼저 나왔던 그의 작품들... 이 책과 같은 여행서인 <인도방랑>과 <티베트방랑>도 더불어 궁금해졌다.

<동양방랑>은 후지와라 신야가 1982~1983년 긴 동양을 여행하며 경험한 일과 사진이 담겨있다.

그가 동양을 여행하던 기간들이 내게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기에 당시의 분위기가 자동으로 연상이 되었다.

어수선했던 우리나라의 분위기처럼 <동양방랑> 역시 썩 밝은 편은 아니다. 음침하다는 느낌이 더 많다.

그가 찍은 사진 역시 초점이 맞지 않고 그늘지고 칙칙해서 인간 내면의 어두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하다.

세상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만 표현하고자 한다면... 틀림없이 그의 내면과 작품 세계는 흑에 가까울 것이다.

단순히 옳고 그름... 백과 흑... 두 세계만 있다 생각했던 어리던 시절과는 달리 그 중간의 세계도 있다는 것...

회색의 세계... 무채색에도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살아오는 동안 온갖 일들을 겪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 책 <동양방랑>은 거의 색이 없다. 사진도 어두워 뭘 찍었는지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알게 되는 것도 많다.

약 36, 7년 전의 동양이고 그때 찍은 사진들이라서 그런지 오늘날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거나(우리 아이들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과거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싶다.

강산이 서너 번이나 바뀐 예전의 모습들은 때로는 추억에 젖게 만들기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도 한다.

저자인 후지와라 신야가 주로 뒷골목이나 후진 동네를 다녔던 탓일까? 더럽고 또 음침하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그곳에 여행 가고 싶지 않아란 생각이 저절로 드는 곳도 한두 곳이 아니었다.

물론 멀다면 먼 과거의 경험담과 풍경들이라서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방랑>은 묵직한 책이다. 실제 이 책의 두께와 무게도 만만치 않게 묵직하지만...

동양의 서쪽 끝에서 동양의 동쪽 끝까지 그와 함께 여행하면서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하겠다.

땅의 기운이 사람을 만들고 그 기운이 종교와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 새삼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광물적 세계인 이슬람 국가들... 그 세계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눈빛... 그리고 그 사람들의 기질...

식물적 세계를 살아가는 불교 국가들과 힌두교 국가들... 그 사람들의 심성과 눈빛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

서쪽과 동쪽으로 두 세계는 실제 거리가 멀지 않음에도 땅의 색깔도 달라지고 이념도 달라진다고 한다.

이 책 <동양방랑>을 통하여 종교의 탄생도 엿보게 되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관도 엿보게 되었다.

워낙 두꺼운 책이라서... 거의 여행이 끝날 무렵이라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나올까 무척이나 궁금했음에도...

미리 펼쳐 읽기가 싫은 마음에 한반도에 대한 부분이 나올 때까지 조급증을 달래느라 나름 애먹었었다.

광주의 그날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오고... 청량리 사창가의 윤락녀 이야기로만 채워져 실망은 있었지만...

이 책 <동양방랑>은 후지와라 신야가 세상을 어떠한 눈으로 보는지에 대한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밝고 화려하고 반듯한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그늘진 곳이 담겼었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후지와라 신야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하다고 밝혔듯... 그의 또 다른 여행서를 읽고 싶어졌다.

정신세계의 성지라며 사람들이 찾아들 가는 곳... 티베트와 인도에 대한 내밀한 부분을 엿보게 될 듯한 책들이다.

참고로... 이 책에 실린 글들도 너무 좋았다. 모처럼 상념에 빠져들듯 흠뻑 빠져 그의 글을 읽었다 할 것이다.

오래전 그가 동양을 방랑할 무렵 나의 무채색 감정들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할까? 암튼 나는 그랬다.

 

 

 

동양은 인도 아대륙을 경계로 그 원질이 동과 서로 나뉜다.
서아시아의 광물적 세계－이슬람 세계.
동아시아의 식물적 세계－힌두, 불교 세계.
광물은 사람을 죽이고, 식물은 사람을 기른다.
광물은 사람을 경직되게 만들고, 식물은 사람을 유화하게 만든다.
광물은 신비를 내쫓고, 식물은 신비를 자라게 한다.
광물은 혼돈을 허용하지 않고, 식물은 혼돈을 허용한다.
적대의 정신과 관용의 정신.
일신교와 다신교.
우상 배척과 우상 숭배.
태음력과 태양력.
얼마나 많은 것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광물적 세계와 식물적 세계의 대립 양상은 그대로

이슬람교적 성격과 힌두교적 성격, 불교적 성격의 대립 양상이기도 하다.
대립하면서 동일한 종교 행사를 가진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일한 만큼 한층 더 대극에 있다.
--- p.178

 

이 긴 여행에서 나는 인간을 만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멍청한 인간이든 고귀한 인간이든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을
일생일대의 인연으로 여기고 소중히 대하기로 했다.
변두리 유곽의 창녀에서 심산에 틀어박힌 스님까지
그 어떤 인간이든 철저히 사귀기로 했다.
여행의 중반, 콜카타에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나는 회생했다.
또다시 인간이 한없이 재미있어졌다.
얼어붙은 여행이 녹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되찾았다.
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다.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의 빙점을 녹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체온이다. --- p.515

 

 

 

 

동양방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