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울림을 지닌 명령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냉정하고, 당당하고, 거침없다. ’씨팔년’이란 말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일본인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한 바닷가 마을

해변이 아닌 안 쪽에 위치한 싸구려 호텔 아이리스

엄마와 둘이서 호텔을 지키는 마리

어느날 매춘부와 싸움을 한 초로의 남자에게 시선을 뺏긴다.

그것도 거침 없는 욕설에 마음을 뺐겼다.

 

마리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다.

그 충격인지 나이 차를 가늠할 수도 없는 번역가에게 빠져드는 것 같다.

거칠고 속물근성이 있는 어머니에게 잡혀사는 인생

1년에 단 몇개월 반짝하는 호텔에서 시들어가던 마리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이 매일매일 반복적인 일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번역가를 만날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

일을 도와주는 아줌마가 손버릇이 나빠도 별 상관없이 지내는데

필요에 의해서 협박도 한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때로는 잔인해지는 습성을 깨끗하고 간결한 문체로 아주 잘 보여주었다.

 

밖에서 만날 때는 신사적이지만 번역가의 섬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간이 멈춘듯한 그곳에서 마리의 몸은 학대를 받는다.

그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진행된다.

옷이 다 벗겨진채 몸을 묶인채 사진을 찍히는 마리

다른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큰 범죄다.

 

끝이 어떻게 나올까 좀 걱정되었다.

소설가의 집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리가 나오는 러시아 소설은 없고

필름 속 추악한 학대의 흔적만 남아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별 다섯개도 부족할 만큼 좋았지만

호텔 아이리스는 5개에서 좀 빼고 싶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수학으로 대변되는 변하지 않는 궁극의 세계에

대한 수줍은 고백이라면 호텔 아이리스는 몸을 통해서 한계가 있는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더니 박사님과 번역가는 엄청 닮았다.

가정부와 마리는 좀 닮았다.

오가와 요코의 단아하고 깔끔한 문체는 변함없이 빛을 발한다.

호텔아이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