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어느 오후.

숯으로 볶아낸 원두로 진심이 담긴 드립커피 한잔을 만든다. 그리곤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이어폰을 꽂는다. 아아. 시간이 이대로 멈춰도 좋을 것 같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가만보니, 이 가게! 수상한 주인장이 있다. '진심을 담아 만들지요'라는 모범 답안만 연거푸 해대는 사람. '에이~누구나 다 그렇게들 말하지, 사실 그렇게 모호한 대답이 어디있냐구, 진심을 담는 다는 말 말야.' 하고 생각해버린다. 그런데 정말 이 가게 주인장, 정말이지 수상하다.

 

책은 이렇게 아날로그적 감성을 듬뿍 담아 시작한다. 글 하나 하나가 아껴두고 읽고 싶을 만큼 감미롭고, 향긋하다. (물론 사진들도 다 사랑스럽다. 특히 색감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마음에 스스륵 녹고 만다)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될까?' 싶은 장소에 그들의 가게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엔 진심을 담아서 만들고 있다는 수상한 주인장들이 산다. 하루 아침에 우르르 유명해지고, 갑자기 으리으리한 새 건물이 들어서는 데도 그 가게, 아직 변함없다. 그저 놀랍다. 하지만 은근히 걱정도 된다. 부디 장사의 모진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제발 불빛이 살아 있기를... 그래서 저자 김주현은 그 가게들을 종종 감시하러(?) 간다고 한다. 아직 살아있는거죠? 하고,

 

책 속엔 '이런 방법으로 장사가 되나?' 혹은 '아니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되겠어?' 싶은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가게들은 아날로그적이고, 그래서 심하게 감성적이다. 주인장들은 하나같이 고집스럽고, 외곬수다. 정말이지 수상한 주인장들이다. 하지만 만 그런 점들이 묘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디지털화된 세상에 단련시키느라 딱딱해진 마음이 어느새 물렁물렁해진다. 어느 날,  마음 한 곳이 너무도 갑갑하여 도무지 숨 쉴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록 따뜻하게 '어서 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말없이 대접하는 음식, 그 자체에 이미 반가운 진심이 담겨 있으니까...

 

저자 김주현씨처럼 나에게도 가끔씩 살펴보는 가게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조그만 카페고, 하나는 조그만 오니기리 밥집이다. 둘 다 엄청 자그마한 (더구나 장사가 무지 안될만한 장소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굳건하게 살아(?) 있다. 이제 한 1년여 넘었으니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소하지만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주인장들! 나도 이 책의 작가 김주현씨처럼 그곳의 주인장들에게 몰래 몰래 응원을 보낸다. 가게의 불빛, 다음에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디지털이 온통 난무하는 시대다. 어쩌면 감성도 디지털화 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닐런지. 그래서 나는 이런 감성들을 마주하면 한 없이 물렁해지고 만다. 비로소 나와 비슷한 부류의 공기에 섞이는 것 같다. 마음 놓고 어수룩해져도 되고, 마음 놓고 고집스러워져도 되는 그런 공간! 골목 길이 끝나는 자리 즈음에, 수상한 주인장들이 지키고 있는 작은 불빛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주인장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장사가 너무 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해요..)  체인점을 마구 내고, 거대 공룡 같아지는 건 어쩐지 슬퍼진다.

 

낡고 오래된, 그 노란 불빛... 어쩌면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