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의 건강검진에서 안좋은 소식을 들었다. 당뇨병과 혈압이 있어서 앞으로 식생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엄마는 우릴 걱정시킬까봐 그러셨는지, 초반 증세이기 때문에 꾸준한 식생활 개선과 운동으로 나아질 수 있다고 장담하셨다. 그러다가 우연히 엄마의 환자수첩을 보게 되었다. 당뇨증세가 있는 사람에게 병원에서 나눠주는 수첩같았다. 수첩 안에는 "나는 당뇨병 환자입니다. 내가 정신을 잃거나 쓰러져 있다면 000 에게로 연락해주시고, 그 사람 전화번호는 000-0000-0000 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빈칸엔 내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슈퍼맨보다 더 용감하고, 원더우먼보다 더 빠를 것 같던 우리 엄마가 그런 수첩을 갖고 다녀야 한다니...

 

당장 어떤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 수첩을 보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나는 엄마를 위한 비밀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되도록이면 엄마와 함께 매일 운동을 했고, 당뇨환자에게 좋은 건강한 반찬도 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체중감량과 영양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정평이 나있는 채식반찬에 관심이 갔다. 더욱이 엄마가 나물반찬을 좋아하곤 하셨으니 나물반찬을 배워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 저 책 관심을 갖다가 이 책 <나물요리>도 만나게 되었다.

 

<나물요리>는 일단 백과사전처럼 조목조목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식성별로 찾아서 요리하기에 참으로 좋은 책이었다. 첫장을 열면 따뜻한 마음씨가 돋보이는 저자의 머릿말이 나오고, 1부는 사계절 제철 나물요리가, 2부는 응용 나물요리가 소개되어 있다. 각 나물별로 특징을 설명하고, 어떤 효능이 있는지에 먼저 다룬 다음, 그 나물에 관한 대표 레시피들이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특히 1부는 제철에 나는 나물을 다루었기 때문에 영양도 듬뿍, 맛도 듬뿍인 반찬만들기에 그만이다. 그리고, 손님이라도 맞이하게 되거나 가족의 입맛을 살려주는 특별식을 생각하고 있다면 2부에 수록되어 있는 응용나물요리 섹션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에는  미나리 강회, 나물밀쌈, 콩나물 주꾸미찜등 멋과 맛을 겸비한 요리들이 두루 두루 수록되어 있으니 한 두개 쯤 주부의 비밀병기(?)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또한 1부에 나와있는 제철 나물요리를 넘어 2부의 응용 나물요리까지 섭렵한다면 각 식단별 특징에 맞게 건강한 식단을 구성하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친정엄마"가 혹은, "고향언니"가 해주는 듯한 토속적인 정(精)이 담겨 있어서 좋다. 손님한테 나가는 밥상이든, 식구한데 나가는 밥상이든,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안다. 별다른 양념을 얹지 않고도 자꾸만 밥이 줄어드는 그 마법의 맛을 우리 마음이 알아주는 것이다. 제철에 나는 좋은 채소로 영양이 가득한 반찬 한 번 더 먹고 가주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처럼... 누군가를 위해 반찬을 만드는 과정은 정성,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어릴 적, 내가 아플 때 나를 위해 죽을 만드는 엄마의 등은 참 따스했더랬다.  아마 나는 그때'엄마가 나를 위해 저렇게 음식을 오랜 기간 만드는 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과 '엄마를 독차지했다' 는 으쓱함에 더욱 기분이 좋았었던 것 같다. 어렴풋하지만 그때의 따스한 기억을 담아... 엄마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이제 내가 베풀 차례가 된 것 같다. 조리대 가까운 곳에 <나물요리> 하나 놓고, 모를 때마다 참고해서 본다면, 아마도 조금은 부족하지만 정성만큼은 가득 담긴 반찬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분명 "요리도 할 줄 모르는 애가 이런건 언제 배웠대?" 하면서 손사레를 치시겠지만, 나는 안다. 그 옛날, 내가 학교에서 100점이라도  받아오면 안 그런척 하면서 동네 방네 다 자랑하고 다녔던 엄마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