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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체면! 빌어먹을 예의범절! 그것들 때문에 그녀의 몸은 속수무책으로

조금씩 시들어가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빌어먹을 페드로! 그는 너무 점잖고, 너무 올바르고, 너무 남자답고,

너무…… 너무 사랑스러웠다!

-66p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멕시코 작가인 라우라 에스키벨이 쓴 소설이다. 제목부터 흥미롭고 내용도 매우 독특하다. 12개월의 요리 레시피처럼 구성된 이 소설은 사실 22년간 이뤄지지 못했던 두 남녀의 사랑이 큰 주제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의 주인공인 티타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가수 싸이의 노래처럼 정숙해 보이지만 도발적이고, 관습과 삶에 갖혀있지만 에로틱한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굳이 제목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초콜릿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이렇게 말한다. 달콤하지만 끝맛이 씁쓸한 특징 때문에 예술 작품에서 첫사랑과 같이 이뤄지기 힘든 사랑이나 감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티타는 과연 어떨까? 이 소설을 보면서 내가 가장 좋았던 점은 쉽게 읽힌다는 점이었다. 내용이 흥미로워서 중간에 그만 읽을까 고민하지도 않았고, 문장도 간결하고 빨라서 버스에서 읽었음에도 멀미조차 하지 않았다.

"난 당신의 침묵을 깨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고, 당신이 왜 말을 안 하려고 하는지 내가 나간 후에 벽에 적어주시겠어요? 그럼 내일 당신이 보는앞에서 알아맞혀 볼게요."

물론 박사는 티타에게 어두운 데서 빛을 발하는 인의 특성을 말해 주지 않았다. 티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존이 이런 속임수를 쓴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티타가 글을 통해서라도 세상과 새로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존은 티타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엇다고 생각했다.

-127p

나는 티타의 첫사랑이 안타까웠고, 그녀를 힘들게 하는 관습과 어머니를 함께 원망했다. 막내는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부양해야한다는 관습. 그런 관습의 존재 자체에도 분노했지만 그를 강요하며 막내 딸인 티타에게 상처를 주는 어머니의 태도에 다시 한번 화가 났다. 몇번이나 티타가 그녀의 둘째 언니처럼 일탈하듯 떠나거나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를 응원했지만, 나의 감정 속도와 티타의 감수성은 아직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티타는 체면과 예의범절에 대해 빌어먹을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페드로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큰언니와 결혼하는 것을 알면서도 상처를 받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티타의 요리는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승화과정과 같다.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적 어려움이 있을 때 어쩌면 그녀의 요리는 좀 더 화려해지고 전문적이며, 더 가족을 위한 것처럼 감정을 속이는 수단으로 쓰인다.

자신이 원망하고 미워하고 싶어지는 어머니와 큰 언니에게도 멋진 요리를 주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하고, 페드로에게는 같은 요리를 주면서 사랑의 전달 방법으로 활용한다. 때때로 감정을 눈치 빠른 어머니에게 들켜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이내 감정을 누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 집안 일. 그 중 특히나 요리로 마음을 컨트롤 하고 싶어 한다. 난 개인적으로 티타가 그녀의 마음이 최초로 가장 심하게 무너졌던 당시에 함께했던 존의 곁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그것은 독자인 나의 마음일 뿐이고, 운명은 그녀를 첫사랑 페드로에서 떠날 수 없게 했다.

페드로와 함께, 그녀의 마음속 불길이 다시 타오를 가능성도 죽어버렸다. 페드로와 함께 성냥들도 모두 떠나버렸다. 티타는 지금 그녀가 느끼는 열기도 그걸 지탱할 연료가 없으면 차츰 식을 거라는 걸 알았다.

-257p

티타의 사랑은 모든 난관이 무너지고, 그녀와 페드로의 사랑을 막고 있던 사람들의 죽음과 빠른 세월이 지나면서 공식화 되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뤄지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슬픈 결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사랑은 너무나 불꽃같고 아름답고 오래 기다린 것에 비하면 조금은 허무하게 사라진다. 마치 달콤하지만 끝자락이 쌉쌀하게 녹아 사라져버리는 초콜릿처럼.

나의 감상이 옳은 것인지, 작가의 의도에 맞닿아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야길 모두 읽고 나서 제목을 보았을 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제목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나도 이렇게 흡인력 있고 끌리고, 여자가 읽고 나서 가슴이 뜨뜻 뭉근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달콤하지만 강렬하게 쌉싸름함을 남기고 이내 사라져버린 사랑.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동명 영화가 있던데 그도 찾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