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설이며 추석 명절이면, 좋아하는 책들을 학교도 안가고 쌓아놓고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고,

일기장에는 읽고 싶은 책과 읽은 책의 목록이 빼곡했을만큼 책벌레였던 저는 엄마가 되어서도 아름다운 책을 보면 가슴이 마구 요동쳐옵니다. Bryan Wildsmith의 <바보 사냥꾼과 멋진 사냥개>를 읽고도 가슴이 아릿아릿 저리면서 행복해집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제가 제 아이들보다 더 쉽게 아름다운 동화책에 빠져들고 또 헤어나오지 못하나 봅니다. 오늘 종일 Bryan Wildsmith할아버지의 따뜻한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원제목은 Hunter and His Dog입니다.

'현북스'에서는 이 책의 주제가 명확히 드러나는 타이틀로 조금 손을 보았나봅니다.

왜 사냥꾼더러 바보라 하고, 사냥개는 멋지다 할까요?

사냥개는 강아지 때부터 hunting을 유일한 목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아왔고 실제 사냥능력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냥꾼의 총에 맞아 피와 눈물을 흘리는 가여운 오리를 차마 사냥꾼에게 포획물로 가져가지 못하고, 멍청무능한 사냥개가 될지언정 차라리 나뭇가지를 물어갑니다. 사냥꾼이 쏘아대는 총알이 휙휙 갈대밭위를 지날 때마다 오리들을 스러져갔고, 사냥개는 오리대신 나뭇가지를 물어갑니다.

통탄할만큼 가망없는 사냥실력의 사냥개가 밤 중에 몰래 빵을 가져다가 다친 오리들에게 물어다 주는 것을 본 사냥꾼은 그제서야, 가망없었던 한심꾼은 자기 자신임을 깨닫고 뉘우치게 됩니다.

사냥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엉망인 사냥실력을 변명하려고도, 직업적 동물사냥꾼인 주인의 냉정한 총질에 훈계한적도 반항해본적도 없습니다. 그저 바보로 보였을 지언정 묵묵히 자신의 철학을 몸으로 실천합니다. 하지만 그야말로 천마디 만마디 말보다 강한 전염력을 가지고 있네요.

The Kate Greenaway Medal 상 수상자이자 영국의 3개 그림책 작가인 Bryan Wildsmith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색채와 섬세한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묵묵히 자신의 철학을 풀어냅니다. 훈계도 아니고, 딱딱한 설명도 아니고, 그저 그림만으로 생명있는 삶들의 공존가능성과 상호연관성을 느끼게 합니다.

실제 공장지대인 영국의 요크서 지역에서 자라서 온통 회색세상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지요.

I believe that beautiful picture books are vitally important in subconsciously forming a child's visual appreciation, which will bear fruit in later

그가 그린 그림과 그 마법적 색채는 무의식 속으로 스며들어

인생마디의 어디쯤에서인가 슬금 다시 올라올 것만 같습니다.

제가 특히나 감동을 받았던 그림은

 

 

 

총에 맞아 다친 오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 보이나요? 말로 하지 않아도 개와 오리는 고통과 연민과 미안함을 교감합니다. 또한 이 책에서 Bryan Wildsmith는 창과 문의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여, 독자가 '사냥개와 사냥꾼 오리'의 세계를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고요히 창 저 이면의 세계를 지켜보는 조용한 구경꾼으로 위치시켰습니다. 유난히도 창과 문, 혹은 빛이 드리워진 차양의 이미지가 삽화에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런 효과를 위해 저자가 꾸린 장치가 아닌가 합니다

 

 

 

빛과 색으로 고통이나 연민등의 추상적인 감정을 전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는 지니고 있습니다. 총에 맞은 오리들의 그림을 잘 살펴보세요. 7세 아들녀석이 "엄마, 오리들도 총에 맞아서 몸이 빨갛고, 올빼미도 여기서는 눈이 빨갛게 나와."하고 그런 색감의 효과를 직관적으로 알아내더군요.

 

 

결국 이야기는 더이상 바보가 아닌 사냥꾼과 애초부터 바보인 적 없었던 사냥개의 보살핌으로 상처가 치유된 오리들이 붉은 노을 속으로 날아가는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철학적인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의 세계는

다행히도, 현북스를 포함한 국내 여러 출판사의 노고 덕택에 많이 출판되어 있답니다. 저는 아직까지 정글파티나 ABC책 밖에 읽은 적이없는데, 이제부터라도 한권한권 수집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