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이 책은 제목처럼 82년생 김지영 씨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육아우울증으로 마치 다른 사람이 빙의된 것처럼 행동하는 도입부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김지영 씨의 출생부터 서른네 살까지의 삶을 찬찬히 따라가며 읽다보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삶을 살아 온 나에게는 무척이나 공감가는 소설이었다.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구체적인 수치나 통계자료들은

이 책이 단순한 허구에 그치는 소설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증명했다.

나는 아직 결혼은 안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살아가는

한 여성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나도 겪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김지영씨에게 더욱 마음이 쓰였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김지영 씨의 담당 의사로 나오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그린 듯 하여 서글펐다.

대학 동기이자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아이가 ADHD 진단을 받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는 정신과 의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 병원에서 일하다가

임신으로 일을 그만두는 여선생에 대해서는 훌륭한 직원이지만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라며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일을 해내고 진급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고,

내 수입으로 내 생활을 책임진다는 것이 보람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끝났다.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생겨날 밖에 없는 현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해도 전문직이 아닌 이상,

원래 하던 일을 다시 하기는 힘들다.

결국 마트, 식당 아르바이트 같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게 되는 것이다.

육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쉬는 것인데,

돌아갈 문을 닫아버리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무리 남녀평등이라고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육아, 가사노동은

여성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짧지만 묵직하게 다가오는 구절이었다.

내가 느끼는 바가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 소설에 나온 것처럼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로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부모님의 성을 다 따서 쓰는 경우도 있지만 특이한 몇몇 케이스에 불과하고,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꾸만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들, 그리고 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쓰는 내내 김지영 씨가 너무 답답하고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랐고, 그렇게 살았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늘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김지영 씨에게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내가 될 수도 있고, 주변의 그 누구일 수도 있는

대한민국의 김지영 씨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 응원이 느껴졌다.

아마도 작가 역시 그렇게 살아온 한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와닿는 소설을 쓸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여자이기에 이렇게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지만,

사실 나는 남자가 더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공감과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변화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