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주된 공간으로는 부부가 지하에 얹혀 살고 있는 장모님의 집, 코리안 델리, 사위의 직장, 이렇게
세곳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그래서 복닥복닥 델리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함께 담아내고 있어서 더 좋았다.

권투 챔피언 못지않은 성격의 55세 한국 할머니인 장모님 케이, 잘나가는 변호사인 아내 개브 그리고
법정 최저임금에 가까운 봉급으로 문예 계간지 <파리리뷰>에서 중간편집자로 일하며 유유자적 문학에
푹 빠져 지내고 있는 사위가 함께 일을 냈다.
어머니가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되돌려주고 싶었던 딸의 고민이
어머니에게 다시 사업을 차려드리자는 것으로 결론 내려져 델리를 하나 사기로 했던 것.

보온 진열대를 두고 싶어하는 장모님과 그것보다는 좀 더 품위 있는 델리를 원했던 사위는 처음부터
견해 차이를 보이며 삐걱거리다 몇 달만에 브루클린에 위치한 차고만한 크기에, 아주 더럽고 상태가
좋지 않은 아랍계 살림네 가게를 인수하게 되는 그들.
자신이 꿈꾸던 낭만적인 델리는 멀리 날아간 채 계산의 달인인 장모님과는 달리 돈을 세거나 계산하는
일에는 재주가 없는 사위는 이제 물건정리나 물건담아주기 등을 담당하는 조수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고,
사업장 동료들과 한 집에 살고 있으니 이제 가게가 집까지 연장되어 집은 기숙사동 비슷해져버렸다.
그리하여 드디어 가족사업으로 시작된 코리안 델리는 그야말로 좌충우돌 많은 이야기들을 낳으며 또한
많은 변화를 불러오게 되는 이야기다.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화적 충격이나 가치관의 충돌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히 극복해야 하는 문제였지만, 이 책에는 장모와 사위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 재미와 감동을 더해주고 있는데,
에어컨과 냉장고 수리 기술자인 장인 에드워드, 늘 창고인을 해보고 싶었다며 하루 정도 일하게 해달라던
파리리뷰의 조지, 델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17년 동안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흑인 점원
드웨인 그리고 속썩이는 단골손님들까지.
그래서 단순한 델리나 가족 이야기가 아닌 부루클린의 사람 사는 이야기가 물씬 물씬 풍기는
<마이 코리안 델리>는 소설에 버금가는 충분한 재미를 준다.

저자인 백인 사위는 말했다.
너무나 낯선 영토로 얼떨결에 여행을 떠나게 됐지만 그것은 결국 좋은 여행이었고 꼭 필요한 여행이었다고.
떠올리면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있지만 결국 그가 되살려내고자 했던 것은 그 경험과 느낌이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시작된 변화에 대해 정직하게 쓰고 싶었다고.
그래서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델리 계산대 일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어느새 책 속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도 친근한 이웃인냥 느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