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킬러'의 이야기. 이 책의 핵심은, 우리들 모두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죽음ㅡ그것이 기근이든, 전쟁(혹은 내란)이든, 테러이든, 착취든 상관 없다-에 직,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가령, (이 책에 묘사된 것처럼) 콩고에서 내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핸드폰을 쉽게 바꾸기 때문이다(핸드폰 핵심부품의 원료가 대부분 콩고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그 이권을 놓고 콩고의 정부군과 반군이 전쟁을 하고, 수만 명의 콩고인이 학살된다). 핸드폰을 구매하는 사소한 일에서 파생하는 거대한 나비효과다.

 

주인공의 직업은 타살이 자살로 판결되도록 만드는 컨설턴트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망상의 그물처럼, 도처에 존재하는 회사에 소속되어 그 시나리오를 만든다. '법에 의해 자살로 판별된 한 사람의 죽음에는 알려진 것과는 정반대로 철저히 숨겨진 배후가 있고, 그 배후에는 주인공이 만들어낸 정교한 시나리오가 있다.'는 이 책의 줄거리가 솔깃하기도 했다. 작가의 의도도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자살(혹은 '죽음') 또한 일종의 시스템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마지막에 가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무기력한 현대인의 초상만 남았기 때문이다. 내가 전세계적인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단순한 이유로, 누군가를 청부살해하는 그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주인공이 소속된 '회사'는 결코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물론 '회사'가 관료주의 혹은 권력, 또는 자본주의의 알레고리임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이 책의 의미를 상당히 축소시킬 수 있다. 도식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