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을 꿈꾸는 지구 위의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나이기에, 이런 책은 사진 한장 한장 허투루 넘길 수가 없다. 내가 저자와 취미가 같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가 그의 공간을 어떻게 꾸몄는지가 내 눈을 똥그랗게 뜨게 만들 뿐. 어느 하나 놓칠까 뚫어지게 그의 작업실 사진을 살펴본다. '와~ 그는 갖고 있구나.' 내가 저자에 대해 품는 부러움은, 그의 작업실이 넓찍해서도, 꽤 비싸보이는 오디오들과 LP판, 커피 도구들 때문도 아니다. 저자는 결국 가진 것, 그리고 나는 아직 못 가진 것. '스스로만을 위한 공간, 작업실' 그 존재 하나로 오롯이 그는 내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무언가를 위한 공간을 꿈꾸기 마련이다. 나는 네 벽면을 책장으로 가득채우고, 영화 속 책장사다리(요게 꼭 중요하다)와 푹신푹신한 쿠션들로 방 하나를 채우고 싶다. 이 단순한 생각은 점점 꼬리를 문다. 기왕이면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큰 창이 있었으면 좋겠고(그래야 비오는 날 창문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경쾌할 듯하다. 아... 저자는 작업실은 꼭 지하여야 한다고 했는데--+), 쿠션도 아주 푹신푹신해서 몇 시간이고 허리, 목 안아프게 책을 볼 수 있어야 한다던가.(요게 의외로 쉽지 않다는 걸,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책 냄새도 좋지만 커피향 가득했으면 좋겠고.... 아무튼 내 상상은 점점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하는 공간으로 변해버린다. 나뿐이겠는가. 저자같이 오디오와 LP판을 좋아하는 사람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소품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 그들만의 작업실을 꿈꿀 거다. 그리고 이 책엔 그러한 작업실, '줄라이홀'의 주인인 저자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실 줄라이홀의 진짜 주인은 LP판과 오디오, 커피일지도 모른다. 벽면을 가득 채운 LP판. 이곳이 한 개인의 공간인지 의심스럽게 만드는 오디오. 내 눈을 사로잡는 커피 기구들....(흑ㅠㅠ). 하지만 이런 에세이를 읽을 때는 글쓴이와 읽는이 사이에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법인데, 저자와 나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었다.

나는 오늘날의 재미가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 TV의 개그 프로가 하나도 웃기지 않고 하나같이 똑같은 연속극들을 시청할 인내력이 없다. 멀티 샘플링에 불과한 인기 가요가 음악으로 들리지 않고 발랄하고 도발적이라고 인기를 모으는 칙릿 소설이 문학으로 읽히지 않는다. 백 년 이상 된 작가의 작품만 읽는다는 어느 외국 소설가의 선택이 전혀 거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과연 뼈아픈 고통과 비장한 존재의 무게감은 모두 실종되어버린 것일까.(P.166)

신문은 종이신문으로 읽어야 읽은 것같고, HOT·젝키같은 아이돌 풍년이던 시절에 청소년기를 지냈건만 난 줄기차게 김동률과 토이를 좋아했더랬다. (어쩌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시장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좋은 노래는 온라인 음원으로 사기 이전에 CD를 사고, 심야 라디오를 듣는다. 그래도 나는 무한도전이 좋고, 가끔 좋아하는 드라마도 생긴다. 몇 번듣고 질려하면서도 단순 반복적인 요즘 인기가요들도 듣고, (고전도 좋아하지만) 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신작들을 좋아한다. 나도 내 또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날로그적인데, 저자는 한 수 위인 것이다.

그래도 저자와의 공통점을 찾았다. 칙릿소설과 자기계발서적에는 나도 손이 안간다.^^;;

실용에 몸살 난다. 처세, 경영, 자기계발에 등 터지겠다. 줄라이홀 생활에 대해 쓰고 있자니 사방?? 세상에는 직접적인 쓸모가 있는 실용서가 아니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네...." 오호라, 실용의 왕국에서 관념을 어우적대고 있다니. (pp.64~65)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반가운 마음도 잠시, 잠깐! 그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가 아닌가. 흠....내 대학전공이 뭐더라. 그가 바로 몸살을 내고 있는 경영이 아니던가.^^;;

사실 나는 그가 관심을 갖는 LP판, 오디오, 커피중 커피만 약간 알 뿐이다. 하지만, 한줄 한줄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어딘가 어두침침하고 삐딱선타는 그의 일상이야기가 이어지다가 LP판이나 오디오에 대한 지식들을 늘어놓을 때면 분위기는 급변한다.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라곤 무턱대고 가끔 듣는 수준이지만, 악장과 악장의 분위기 전환, 그의 글은 그런 느낌의 연속이다.

오디오파일(애호가)이 아닌데 아직까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대단한 참을성을 가진 사람이다. (P.226)

그 덕에 나는 저자에게 칭찬까지 들었다.ㅋㅋ

'결혼하고 네 집 생기면 사'하는 엄마 잔소리에, 책장을 늘려가는 일마저 쉽지 않지만 꿈은 꿔보련다. 흑, 내 지구 위의 작업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