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날고 싶은 요즘이다.
멋지게, 전혀 추락없이 날겠다는 것도 아니고, 낮게 날기 시작해 가끔 고꾸라져보기도 하겠다는데도 나의 발돋움을 누가 자꾸 잡아당기고 있다. '넌 아직 안돼.' 에휴. 한숨을 폭- 쉬며 주위를 둘러보니, 잡혀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혈기왕성한 20대들이 이렇게 힘드니, 다른 누군들 힘이 안들겠는가. 『날아라, 잡상인』이라는 제목부터가 맘에 꼭 들었다. 만화 속 로봇의 발에서 추진력을 나타낼 때 종종 등장하는 불꽃! 혹시 이 책이 그런 불꽃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반듯하게 생겨서 못뜨는 개그맨 공채 출신의 철이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 개그맨들의 물심부름에 염증을 느끼고 극단을 뛰쳐나온다.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할머니, 조지아 여사의 집에 빈대붙어 살다가 여사의 손에 이끌려 만난 미스터 리를 사부로 삼아 지하철의 잡상인계에 뛰어들게 된다. 지하철 잡상인계의 판매실적 1위인 미스터 리의 판매모습을 아무리 뚫어지게 지켜보아도 비법이라곤 찾을 수 없어 철이는 잡상인계의 깨지지 않을 판매기록을 세운다. 하루에 1개 판매. 1000원.

사람들은 지하철 상인들을 눈여겨 보지 않는다. 아니 눈마추치기를 꺼려하며 무시한다고 해야 정확하려나. 나만 해도 지하철을 탈때 이어폰을 꼽고 머리를 푹 숙인채 책장만 넘긴다. 나는 사지 않는 미안함에서 나오는 행동이지만, 상인들이 섭섭도 하겠다, 싶었다. 안 사도 관심은 보여줄 수 있는 건데, 일부러 머리를 더 푹 숙이는 못난 나이니...

철이가 땀을 삐찔삐찔 흘리며, 관심도 갖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공허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 수지를 만났다. 소리를 못듣고, 말을 못하는 그녀는, 맞춤법도 일부러 좀 틀리고 어딘가 허술해보여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철이의 조언에, 자신은 구걸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수치심을 팔고 있는 거라고 말한다. '수치심을 판다고?'

책 속 캐릭터들은 실수투성이에 허술해보이거나 너무 넘쳐보여 더 사랑스럽다. 유부남과의 사랑으로 아이를 배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철이를 손자로 키운 조지아 여사, 비싼 외제차에 번쩍번쩍하는 고층빌딩의 소유자이면서 빛을 나누기 위해 지하철에서 플래시를 파는 미스터 리, 허풍쟁이지만 달롱이 아줌마와 아이를 끔찍히 아끼는 해롱이 아저씨, 눈도 멀고 귀도 먹고 앞도 보이지 않는 효철이를 동정이 아닌 정말 사랑을 하냐고 묻는 철이에게 동정이 나쁘냐고 되묻는 지효.....

다들 삶의 힘겨움에 지쳐있을 법도 한대, 이상하게 그들의 삶엔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읽는 이에게 웃음을 주고,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어준다.

 

"잘 봐. 이 남자는 길을 떠났구나. 준비를 하고 떠난 건 아닐 거야. 갖고 있는 짐이 너무 작잖니. 고작 해야 주먹밥 한두 개가 들어 있을 거야. 그런데도 그의 얼굴이 행복해 보이지 않니? 아무 걱정도 없어 보여. 그건 그의 영혼이 자유롭기 때문이야. 얘야, 이 카드가 너에게 물어보라는구나. 네가 완전한 믿음과 신뢰를 갖고 있는 일이 있는지. 그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분석과 논리로 이해하려는 것은 아닌지." (......) "이 카드의 번호 0은 시작을 의미하는 숫자란다. 이제 너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게 될 거야."(p.97)

우리의 현명한 조지아 여사의 말씀대로, 때로는 머리를 톡톡 두드려 답을 구하기 전에, 가슴에 손바닥을 가만히 가져가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끔, 우리는 삶의 리셋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