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답게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주인공 내면 심리묘사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보통기준에선 착하다고 할 수 있는 선량한 마음을 가졌고 동정심이 풍부한 사람이지만 자기자신에 대한 내적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다. 귀족자제들이 많이 가는 기병병과의 장교지만 실상은 가문의 체면을 위해 집안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갖은 백을 써서 그 자리를 겨우 차지한 그저그런 집안배경의 기병소위이다.

그래서 그 자존심과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지역졸부의 무남독녀 다리장애딸의 청혼에 대해서 이를 거부하며 최종적으로 회피하는데

(동료들이 돈 보고 다리 못쓰는 졸부의 딸한테 접근해 결혼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대해 사랑하는 관계라는 사실 자체를 공개적으로 극구 거부함)

이때문에 충격을 받은 상대 여자가 자살을 하고 곧이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1차대전이 벌어져 이런저런 일들로 아는 사람은 모두 흩어진 숨겨진 과거를 가진 채로 옛날 자신의 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평생 가져가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실제 사실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그 긴장감과 갈등의 고조로 숨막히는 재미를 느끼며 이야기 속에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역사적 인물을 조명했던 그의 글답게 소설의 형식에서도 그의 글은 꾸밈과 가식이 없고 뚜렷하지만 쓰린 진실을 묘사한다. 해피엔딩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닌 비극적 운명의 상처를 지닌 한 인간의 슬픈사랑과 종말을 담은 어떤 파멸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니 생각나는 책이 있는데 예전에 '시크릿'이라는 심리서적이 한 때 대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무엇이든 간절히 생각하고 바라면 온 우주의 에너지가 그 소망의 실천을 도와 이루어지게 된다는 내용인데, 그게 진짜 명백한 우주의 진리라면 지금 현재 속절없이 굶어죽어가는 아프리카나 북한의 인민들의 소망은 그 우주에너지가 얼마나 개무시를 하고 있다는 반증인가? 전쟁으로 죽고 피해를 본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과 반복되는 자연재해로 열심히 노력했어도 굶어죽을 처지가 되었던 옛날부터의 수많은 농부, 어부 등등은?

이 소설에서도 그 좋은 말인 희망과 기대가 어떻게 의학적사실 앞에 무너지는가가 그대로 묘사되어 '언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랑은 좋은 말이지만 모든 사랑이 무조건 아름다운 것일까? 이 여주인공처럼 무서운 집착과 광기를 내보이고 상대에게 마음의 부담을 계속해서 안겨주는 강요적 사랑은 상대를 질식하게 한다. 그래서 결국 주인공도 그 스트레스에 지쳐 질식할 것만 같아 그녀에게서 도망쳤던 것이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내적 유약함과 비겁함에 못난 놈이구나 분노하기도 했지만, 읽고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자쪽 역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그토록 강한 열정을 품었지만(비록 그 강한 열정적 집착에 상대가 숨막혀 했음에도) 좋은 응답을 받지 못하고 좌절하여 자살하였다는 결말은 참으로 씁쓸하고 안타깝다. 제목대로 연민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비록 소설이지만 당시의 현실과 전혀 다른것은 아니었을 소설에서의 묘사를 보면, 불과 100년 전의 오스트리아에선 일개 육군 소위가 저런 높은 대접을 받았다는 것에서 오늘날 거의 하사와 별다를게 없는 취급을 받는 대한민국 육군 소위를 경험해본 본인으로서 참으로 부럽고 격세지감을 느끼는 바이다. 고작 25살인 인근 부대의 소위가 엄청난 갑부인 지역유지네 집에 퇴근 후 자유롭게 들락날락 거리며 충분히 신사로서 존중받고 대접받는다. 아마 오늘날의 사회가 여러면에서 더 진보적으로 발전하고 '민주화(?)' 되었기 때문에 모든 계급에서의 존중과 특권이 전체적으로 다운 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의 리뷰를 마친다.

파멸, 사랑,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