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파서 먹는 밥과 때가 되어 먹는 밥은 맛이 다르다. 공부야말로 일방적인 강요가 아닌 자기가 하고 싶어서 끈질기게 파고드는 공부는 그 맛과 깊이는 다르다고 본다. ‘어떤 일에 있어서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꾼’이라고 할 때 공부 쪽에 있어서 능숙한 ‘공부꾼’이라면 누구든 귀가 번쩍한다. 틀에 매인 학습을 뿌리치고 '야생적인 공부법'을 터득한 공부꾼, 물리학자 장회익 선생님은 <공부도둑>을 통해 공부의 참맛을 보여줬다. 오로지 ‘앎의 즐거움’으로 한평생을 공부농사 지으신 분의 이야기는 공부가 싫어 곁길로 빠졌던 사람도 불러 앉히게 한다.

 

온 생명 녹색 사상가답게 칠십 평생 푸른 삶을 사신 장 선생님은 어렸을 때 반어적인 수법을 쓰신 할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애나 어른이나 약간 놀부 심보가 내재되어 있어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싶고, 하라는 것은 죽어도 하기 싫은 법인데 물 흐르듯 공부의 야생마로 길들인 것은 할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교도 못 가게 했던 할아버지. 강희맹의 ‘도잠설’에 나오는 아비도둑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아들도둑이 안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걸어버린 아비 도둑은 자만심에 빠진 아들도둑이 스스로 지혜를 터득하여 곳간에서 나오도록 미션을 내줬다. 기술은 남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지만 지혜는 스스로 터득해야 것이듯이 할아버지로 인해 장 선생님은 공부는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이미 ‘배워서 아는’ 형태의 학습이 아닌 스스로 바다에 뛰어 들어 고기를 잡은 생생한 공부법을 낱낱이 들려주신다. 

 

 물리학, 이 책에서도 우스갯소리로 소개를 했지만 나는 정말 물리학과 생물학의 차이는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았다. 학교 때 정서적으로 말랑말랑한 문학에나 빠져 방황하던 내가 물리학은 말만 들어도 낯설다. 그런데 <공부도둑>에서는 나 같은 이방인도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저자가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는 동기부터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을 맛깔스러운 입담으로 신명나게 소개를 해주고 있다. 끌려가는 공부가 아니라 앎에 굶주린 짐승처럼 집요하게 달려드는 열정을 보여주어 읽노라면 ‘참공부가 이런 것이구나’하고 동화된다. ‘아인슈타인’, ‘위그너’교양과목을 위해 고작 이름만 외워 시험을 치고 바로 휴지통 비우기 하듯 망각한 내가 ‘분자운동론적 관점’,‘준경험적 방식’등 역시 어려운 용어들이었지만 이해가 안 가면 안 가는대로 깊고 넓게 뿌리를 뻗는 저자의 물리학 학문은 감탄을 하게 했다. 내가 소설 중에 퍽 빠져서 읽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 이야기가 책에 언급됐던 것도 반가웠다.   

 ‘학문에는 王道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활동보다 교실 밖의 활동이 더 활발하고 유익했다는 장회익 선생님이 귀띔해 주신 소박한 공부장소 책상머리, 산책길, 잠자리 이 세 군데를 100% 활용하리라 푸른 다짐을 했는데 잘 지켜낼지 모르겠다. ‘도둑은 아무나 되나?’덜미를 잡혀 망신을 당하더라도 한 번 덤벼나 보고 싶은 ‘공부도둑’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공부도둑들이 활개를 쳐 날마다 메인뉴스에 나왔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