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요약: 한 유럽 여자가 일본 갑부집 아들을 사귀다가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찬 이야기 

조금 더 긴 요약: 일본을 숭배하는 약간 공주끼 있는 벨기에 여자가 프랑스어 과외로 만난 비쩍 마르고 유럽 문화에 대한 동경이 큰 부잣집 아들을 만나 자기 편할 대로 사귀다가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감당할 수 없어 몰래 비행기 티켓을 끊어 벨기에로 도망간 사연.  

이야기의 겉모양을 요약하자면 이렇다는 얘기다. 조금 방식을 바꿔 요약해 보자면, 청춘의 만남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고, 특히나 이들은 동양과 서양의 만남, 사랑(愛)과 연모(戀)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이 너무 젊은 점, 연애와 결혼에 대한 현실과 생각의 차이, 편안함과 책임이나 구속 간의 괴리감 등 청춘의 혼란기를 겪었다. 그 모든 시절을 넘어 추억담으로 펼쳐 보이는 이야기가 이 소설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최신작이라고 하고, 그녀가 쓴 작품 가운데 가장 가볍고 아름다운 청춘의 이야기라고 한다. 일본에서 태어나 5살까지 살았고 방글라데시, 중국, 미얀마, 라오스 등지에서 십대를 보내고 벨기에에서 대학을 나온 특이한 배경을 가진 노통브는 작가생활 10여 년이 넘으면서 이제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린리’라는 이름을 가진, 소위 ‘역(驛)대학’이라 불리는 삼류대학의 불문과 학생인 이 청년을 그녀는 반한다거나 좋아한다는 감정 없이 그가 보여주는 편안하고 거리낌 없는 부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호감을 가진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흰색 벤츠의 이 왕자님은 자상하고 배려 깊고 정성스럽고 친절하다. 더군다나 전형적인 일본 남자가 아니라 ‘혼자 사진기 없이 여행하는’ 남자였고, 서양문명에 대해 깊은 애정과 동경을 지니고 있다. 린리와 아멜리는 첫경험 이후로 불꽃놀이, 히로시마 먹거리 여행, 북쪽 사도의 온천 구경, 후지산 등반 등 다양한 놀이에 빠져들면서 청춘을 만끽한다. 그러다 아멜리가 취직을 하게 되고 둘 사이에는 조금씩 거리가 생기고 결혼을 요구하는 린린에 지친 아멜리는 퇴사 후 몰래 벨기에로 도망을 간다. 수년 후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아멜리는 일본 출판사 요청으로 팬사인회를 하러 도쿄를 방문하고, 사인회 자리에서 아멜리는 60kg의 마른 청년에서 프랑스 여인과 결혼한 후 90kg의 넉넉한 아저씨로 변한 린린을 다시 만나고, 그 세월 동안 둘 사이에 의문으로 남았던 감정에 대해 ‘사무라이식’ 우애의 포옹을 통해 합의를 보며 헤어진다. 

아마도 아멜리 노통브의 실화인 듯하다. 약간 공주끼가 있는 예쁘고 지적이고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아가씨의 심정을 잘 드러냈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물론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사회의 다양한 모습, 일본어와 프랑스어의 연관이라든지, 언어학 전공자인 만큼 언어의 기원이나 사회학적 역사까지 생각해 내는 면 등 아멜리의 사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듯하다 (그다지 유쾌하진 않지만). <내 사랑 히로시마>의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대한 얘기,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얘기 등은 흥미로웠다. 이 책이 과연 청춘의 감정의 미묘한 변화와 차이를 드러내려고 한 것인지, 지독히도 이기적인 서양여자의 자기변론인지 좀 헷갈린다. (그러면서도 과도하게 일본에 대해 숭배하고 일본 국적을 몹시도 가지고 싶어 했다. 감탄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감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린리라는 일본남자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그 또한 서양에 대한 동경으로 아멜리를 좋아했는지, 진짜 좋아했는지 궁금하고(왜 좋아했는지), 우리들에게 진심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은 세상을 다 살아도 명확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생각해 보면 젊은날의 연애사건들이 이기적이거나 바보 같지 않았던 적이 어디 있었을까?)

가끔씩 그냥 소설, 그 중에서도 밝고 경쾌하고 아름답고 재밌고 재치 있고 사랑얘기가 있는,, 그런 소설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만 내게 역할을 충실히 했다. 

* 번역의 문제인지 노통브의 문체의 문제인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중간부분까지 문장이 왠지 서걱대며 자연스럽게 연결되거나 흐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 일본에서 한국인이 어떻게 비쳐지는지 23면을 읽어보면 안다.

* ‘검은 버섯을 넣어 익힌 그 찜을 위해서라면 나는 부모라도 팔았을 것이다’(144면)와 같은 과도하게 오버한 이런 식의 표현이 간혹 나오는데 현재 인터넷에 연재중인 백영옥의 소설(다이어트의 여왕)에서도 많이 본 듯한…, 불편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