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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마케팅과 소비자 행동학을 가르치는 마이클 달렌의 ‘넥스토피아’는 기대사회의 실상을 분석한 책이다. 목표를 향해 다가가지만 신기루와 같이 실체와 접촉할 기회가 지연되는 특징을 지닌 사회가 기대사회이다. 입도선매(立稻先賣)라는 말을 구현이라도 하듯 기대사회에서 다음과 지금은 동일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몇 년 후에 개봉될 영화 가치가 지금 당장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해내는 것이 그 예이다. 인간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기에 어떤 의미에서 미래는 지연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오늘 기대한 그날은 현재가 될 수 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또 다른 내일(기대감)이 이슈로 등장하는 것이다.

기대사회의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셀러브리티(celebrity: 유명인사)가 아닌 익스펙터티(expectity: 다음에 유명해질 사람)이다. 기대사회는 기대감이 주는 행복감에 취해 살게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저자는 시간과 장소, 대상을 망라하여 모든 것이 가능한 애니(any)의 세상 즉 애니 월드를 언급한다. 애니 월드는 당연히 경제발전의 덕이다. 기대사회는 조바심을 이용한다. 조바심은 참을성과 상반되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지만 선택지가 많을수록 만족감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 삶은 다다익선이 아닌 다다익악(多多益惡)이 지배하는 것 같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는 선택지의 수가 증가할수록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를 포기해야 하는데서 오는 더 큰 상실감과 관계된 사안이다. 그리고 우리가 최상의 결정을 내렸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것과도 연관된 이슈이다. 또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진 것보다 더 매력적으로 여기는 인간의 성향과도 관계있는 사안이다. 저자는 애니 월드에서는 결혼이야말로 가장 큰 후회를 남길 수 있는 행위라 말한다. 현대인들은 결혼을 한번 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했지만 계속 새 애인을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특정 물건을 구매할 때 그것이 현재 시점에서 최선의 결정인가까지 생각하는 것이 기대사회의 특징이다. 흥미로우면서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낳는 것은 한 설문조사이다. 미국의 400대 부자, 전기도 쓰지 않고 자동차도 타지 않고 의무교육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동트기 전에는 눈을 뜨고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일터로 향하는 암만파 교도들, 적막한 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이누이트족, 동물의 배설물로 오두막을 짓고 사는 아프리카 마사이족, 자유로운 연애와 가리낌 없는 성생활을 즐기고 사회주의 지지 집회에 나가기도 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평점 6점 정도로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이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삶의 질이 확연히 더 높아지지 않음을 입증하는 실험 또는 설문 조사라 하겠다. 저자는 기대사회에서 결혼이 차지하는 위상을 설명한다. 즉 기대사회에서는 결혼에 대한 기대가 결혼 그 자체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저자는 결혼에 대한 기대를 유지하면서 미혼인 채로 남는다면 이미 결혼을 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고 말한다. 즉 만남의 기대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만혼(晩婚) 현상을 그런 관점에서 해명한다. 하지만 기대와 즐거움은 일방적이지 않다. 만혼은 경제적으로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저자는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도 만족도가 떨어지다가 조만간 회복된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복권에 당첨되어 100만 달러를 받는 것과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하겠느냐는 말을 한다. 당연히 전자를 택하겠지만 저자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두 경우 모두 궁극적으로 삶의 만족도면에서 같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이 역시 설문조사의 결과이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차이가 없어짐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저자는 사는 것(조건)이 좋아서 삶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기에 삶이 좋아지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100만 달러를 받게 된 사람과 장애를 입은 사람은 각자 자신의 처지에 맞는 기대(또는 예상) 수준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살아 보니 그리 좋지도(100 달러를 받은 사람) 그리 나쁘지도(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은 사람)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두 사람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두 사람 각자 기대(예상)치와 결과의 갭을 비교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명확하고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진정한 행복은 섹스나 마약, 음식 등의 추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권리라고 하지만 끊임없이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에게 독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행복과 만족은 별개라고 말한다. 만족은 저에너지에 속하는 것으로 그 상태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자연스러운 정서이고 행복은 고에너지 상태로 보상을 얼마나 해주느냐에 따라 상태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저자는 행복한 상태에서는 기쁨과 행복이 수반되며 삶의 다른 모든 것은 도외시하고 오직 행복한 그 상태에만 몰두한다고 지적하며 삶의 다른 모든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는커녕 행복한 상태에만 집중하는 것은 마약 복용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여담이지만 이 부분에서 생각나는 말은 독서는 만족감을 얻고 유지시키는 가장 좋은 방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행복(행복이란 말이 긍정적으로 정의되는 다른 저자의 책들과 달리 저자의 맥락에서는 쾌락과 유사한 것으로 정의된다.) 추구는 매트 리들리가 말한 ‘붉은 여왕 효과’를 연상하게 한다. 뛰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은. 저자는 실제 계속해서 달리지 않으면 꿈꿀 수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는 곳 혹은 그런 상태가 바로 넥스토피아라고 설명한다. 넥스토피아는 행복이 임박해 있다는 희망이자 미래는 분명 멋질 것이라는 믿음이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저자는 말한다. 넥스토피아는 사람들에게 장밋빛 기대감만을 선사하는 것을 넘어 다른 모든 것을 완전히 압도하는 힘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과거에 잘못한 부분을 자꾸 생각하다 보면 매사에 소극적이 되고 비참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쾌락의 패러독스를 이야기한다. 쾌락의 패러독스는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 그것이 왜 즐거운지를 정확히 알면 오히려 즐거움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예고편을 영어로 트레일러(trailer)라 하는데 트레일러리즘은 예고편으로 주의(注意)와 기대를 부풀리듯 미래에 대해 기대를 갖게 하는 전략이다.

저자는 오늘날 최고의 예고편은 트렌드일 것이라 말한다. 트렌드는 아직 완전히 구현되지 않았고 명백히 결론이 나지도 않은 그 무엇이다. 하지만 트렌드에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있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는 점이다. 트렌드 착각은 경기 침체를 유발하기도 한다. 지금의 경제상태는 도외시한 채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미래의 경제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능력 이상의 소비를 한 결과 파산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반면 경제를 실제 이상으로 나쁘게 본 결과 경기침체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 트렌드 착각은 인간의 기본적 행동 특성인 듯하다.

기대사회의 장점을 잘 살려야 한다는 전제를 붙여야겠지만 저자는 기대사회의 미덕을 언급한다. 활력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이다. 활력(에 따라 삶의 가치와 목표를 상향해야 한다는 믿음 또는 당위)이 때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관건은 활용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다음을 의미하는 next와 확장을 의미하는 expansion의 합성어인 넥스트팬션을 이야기한다. 미래를 확장한다 또는 미래에 닿기까지의 시간적인 거리를 더 늘려 놓는다 등을 뜻하는 말이다.

저자는 인간의 유전자를 모조리 바꿔치기 하지 않는 한 우리의 행동이 변화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지금과 같은 사회발달 속도가 머지않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게 되리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의 이런 행동 자체가 자연의 작품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덧붙인다.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항상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였고 우리가 곧 자연이었고 자연이 한 일은 항상 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도한 낙관주의로 보인다. 끝은 없고 미래는 항상 존재한다는 진단은 특히 그렇다.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세기의 말이 저자의 문제의식과 진단에 잘 들어맞는 듯 하다.

넥스토피아라는 말이 말해주듯 저자가 보는 미래는 낙원이다. 그렇기에 원제에 없는 미래에 중독된 사람들이라는 부제는 적절하지 않다. 중독되었다는 말은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낙관 역시 받아들이는 사람에 달린 문제이다. 저자에게서 배울 바는 긍정과 낙관이다. 더구나 제도와 자연적 한계, 사회적 요인 등이 낙관을 무작정 긍정하고 수용하지는 않으니 그리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최고의 복지와 부를 누리는 스웨덴의 학자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저자로부터 사회를 보는 흥미로운 관점을 경험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미래는 기대하는 것이지만 잘 맞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