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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교수의 <베짜는 하느님>(1989년 조명문화사에서 첫 출간. 2002년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재출간)이란 책. 지난 91년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을 따라 읽은 책을 다시 한번 읽는다. 홍정수 교수는 지난 90년대 초 포스트모던 신학을 통해 구원은 '기독교를 통해서만' 받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한 이유로 감리교에서 출교당한 분이다. 홍정수 교수는 지난 2009년 초 ‘사도신경 살아내기’를 썼는데 이 책은 ‘베짜는 하느님’과 관련한 책이다.

저자가 제기한 이슈는 결코 한때 유행하다 잊혀질 것들이 아니다. 베짜는 하느님이란 말은 구약의 만군(萬軍)의 하느님이라는 호칭에 대비되는 것으로 사람들이 하느님을 어떤 존재로 인식했는지 알게 하는 말이다. 만군의 하느님이란 말이 하느님이 전쟁의 신으로 여겨진 것을 나타내주는 말인데 비해 베짜는 하느님이란 말은 하느님이 평화와 화해를 가져다 주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도로테 죌레는 <말해진 것보다 더 많이 말해져야 한다>는 책에서 “상징들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기보다 그 상징들을 사용하는 인간들의 생각을 투사한 것”이고 “그들의 소원을 표현”한 것이라는 말을 했다. 영적인 존재인 하느님을 인간이 온전하게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칸트의 신(神)이 개별자들에게 귀속할 수 있는 모든 술어들(속성들)의 총체적 저장 창고이듯 스피노자의 신은 무한한 속성들 전체의 <다수성 mulplicite>을 의미한다."는 글을 통해 우리는 홍정수 교수가 ‘베짜는 하느님’에서 제기한 문제 의식에 대한 참고점을 얻을 수 있다.

위의 인용문은 서동욱교수의 <들뢰즈의 철학>의 한 부분인 '새로운 욕망 이론을 향하여'에 수록된 구절이다.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위의 글은 하느님을 전적으로 선한 존재 즉 전선(全善 - omnibenevolent)의 존재로 보는 기독교의 교리와는 다른 차원의 신관(神觀)을 드러내는 글이다.

서동욱 교수에 의하면 우리는 한 사물에 대해 판단할 때(즉 한 사물에 어떤 술어를 귀속시키고자 할 때) 암암리에 그 사물과 모든 가능한 술어들 전체를 비교한다. 우리 이성 내의 완전한 규정의 근저에는 재료 전부(모든 가능한 술어들 전체)를 저장한 창고 즉 하나의 초월적 기체(基體)가 있다. 우리는 이 창고로부터 사물의 모든 가능한 술어들을 얻는다. 이 초월적 기체는 실재의 총체이다. 이 실재의 총체를 칸트와 들뢰즈는 신(神)이라 부른 것이다.

홍정수 교수는 기독교의 부활 사상은 영혼은 선하고 영원하며 육체는 악하고 유한하다고 보는 고대 희랍의 영혼 불멸 사상과, 후기 유태교의 육체의 부활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사상이 결합된 결과라 주장한다. 홍정수 교수가 일으킨 충격파는 "부활신앙이 인간의 생물학적인 죽음의 극복이라거나 죽음 다음의 저세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이라면, 칼 바르트의 생각으로는 이교도적인 신앙일 뿐"이라는 글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홍정수 교수가 이단 신앙을 신봉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은 다음의 글을 통해 드러난다.

<무신론적으로 생각한다면 부활이란 인간의 유한성, 곧 생물학적인 죽음을 극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과학은 그런 부활에 준하는 것을 인간에게 선사할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이나 노화방지의 기술, 또는 세포 하나로 인간을 복제, 재생시키는 기술 등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불멸의 시대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활의 삶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이 염려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 없는 삶'이다.

하느님을 사실상 더 이상 믿지 않는 현대인들은 하느님 없는 삶이 無보다 더욱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바르트는 부활이란 바로 하느님에 의한 우리의 생의 완성을 뜻한다고 과감하게 말했던 것이다. 이 같은 부활 이해가 무수히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줄 것은 뻔하다. 그러나 그들이 실망을 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하느님을 전혀 하찮은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홍정수 교수의 기독교관은 적어도 이기심과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베짜는 하느님’은 모두 열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이다. 가장 핵심적인 장은 죽음과 부활: 이 세상에서의 이야기, 두려움 없는 종말과 소망, 상생(相生)의 영성 등이다. 홍정수 교수가 무신론을 주장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홍정수 교수의 주장이 대부분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슈가 되었지만 “‘만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인류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기독교는 메세지를 잃을 것인가'라는 말만큼 나에게 어필한 글도 없을 것이다.

위에서 칸트와 들뢰즈의 신관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기독교의 神이 설정한 천국과 지옥의 2분법을 지양(止揚)하고 삶을 살다가 소멸(消滅)이나 무(無)로 가는 것을 원하면 안되는 것일까?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이 궁금증 앞에서 천국도 지옥도 아닌 소멸이나 무의 길로 가게 된다면 사람들은 정녕 부도덕하고 사악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끝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이 소멸이나 무로 귀결된다고 해서 과연 몇 사람이나 동물적인 욕망을 좇아 아무렇게나 살게 될까?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아니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종교는 그렇게 동물적인 욕망을 좇아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의 욕망을 제어하는 단순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종교에는 더 깊고 높은 차원의 존재 목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철학자 칸트를 생각해 보자. 그는 ‘순수 이성’은 영혼과 세계, 그리고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자신의 철학을 풀어낸 사람이다.

칸트는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지만 도덕적 요청에 따라 신앙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은 겨우 이 뿐인가, 란 말이다. 다시 말해 신은 오로지 도덕적 목적만으로 존재하는가 말이다. 신이 없다면 바르고 아름답게 삶을 살 가능성은 정녕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신이 없어도 인간은 얼마든지 바르고 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홍정수 교수 관련 글을 검색 하다가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한국 전쟁을 계기로 월남해 개신교계의 교권을 장악한 평안도 사람들의 사투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느님이라는 호칭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생각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이라 하는 대신 하느님이라 할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적어도 하느님이라 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기지는 말았으면 싶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