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가타리의 분열분석과 미시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승철교수의‘식탁 위의 철학’은 오수연의 장편‘부엌’을 생각하게 한다.“부엌은 우리들의 진지(陣地)이고, 우리는 우리의 혀와 위를 단련함으로써 혐오스러운 세상에 대항하고 있다.”는 문장,“채식주의란 실은 신분적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무라뜨는 비난했다. 육식을 안 하면 피가 깨끗하고 고결하므로 높은 신분이고, 그러므로 고기를 먹는 낮은 신분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게 이곳 기득권층의 얄팍한 논리라는 것이다.”란 문장 등등..

 

주목할 것은 소설 속 인물 무라뜨가 인도는 자애로운 채식주의자가 절반인 나라이지만 인간에 대해서만큼은 악의적인 신분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비판을 했다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식탁 위의 철학’을 보며 오수연의‘부엌’을 연상하는 것은 두 책이 삶과 음식, 삶과 먹는 행위의 밀접한 연관성을 알려주는 공통점을 내포했기 때문이다. 오수연은 부엌을 진지(陣地)라 표현한 반면 펠릭스 가타리가 부엌을 오페라의 공간처럼 재창조되는 공간으로 정의한 것은 흥미롭다. 펠릭스 가타리에 의하면 부엌은 사물의 흐름, 불의 흐름, 음식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이 교차하고 어우러져 한 편의 웅장한 오페라 공간처럼 재창조되는 곳이다.

 

펠릭스 가타리는 욕망의 미시정치를 주장한 철학자이다. 욕망의 미시정치란 가족 내에서의 문제나 남녀간 평등 문제는 노동 해방 이후에 논의되어야 한다는 거시정치적 문제의식과 다른, 일상의 정치를 말한다. 물론 나는 부엌과 식탁을 남녀간 또는 부부간의 욕망의 미시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드러내주는 시금석으로 본다.‘식탁 위의 철학’에서 신승철이 논거(論據)로 삼은 철학자들은 가타리, 마르크스, 들뢰즈, 네그리, 스피노자, 푸코, 비릴리오 등이다. 그 철학자들 중 가장 중요하게 인용된 철학자는 저자의 전공과 관련된 펠릭스 가타리이다. 신승철은 김치로부터 리토르넬로를, 잡채로부터 다양성을, 라면으로부터 속도 문명을, 인스턴트 커피로부터 내부 식민지를, 마늘로부터 성(性) 정치를, 소금으로부터 오토포이에시스 등의 개념을 이끌어내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 이야기 꽃 중 대표적인 것은 두부김치와 이질생성의 연결이다. 신승철에 의하면 두부와 김치의 오묘한 만남은 맛의 조화라기보다 맛의 이질생성이다. 펠릭스 가타리는 차이 나는 것끼리 만나 새로운 차이를 만들 때 그 속에는 대안적(代案的)인 움직임이 기계 작동처럼 나타난다고 말했다.(53 페이지: 기계는 스스로 자기생산하면서도 색다른 방식으로 조립되고 연결되어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개체를 의미한다.) 신승철의 말대로 기계적 이질발생은 아주 중요하다.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이 사회를 이루는 작은 기계 작동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56 페이지)

 

원본인 작장면(炸醬麵)에서 비롯된 짜장면을 보며 신승철은 시뮬라크르를 떠올린다. 짜장면은 본래의 맛에서 멀어져서 완전히 다른 의미의 복제품이 된 음식이기에 시뮬라크르라는 말로 설명 가능하다.(짜장면이 등장하는 순간의 다름은 그냥 다름이 아니라 작장면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다름이다.) 한편 빵과 가상성이 연결된 부분은‘불의 정신분석’,‘물과 꿈’등을 통해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 가스통 바슐라르의 작업을 연상하게 한다. 신승철에 의하면 무발효(부풀림 없는) 빵은 상상력이 없는 시간에 대응한다. 신승철의 작업에서 술은 빵을 부풀리는 음식이며 기막힌 상상을 유발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바슐라르의 비(非)프로이트적 콤플렉스의 하나인 호프만 콤플렉스(술을 마시면 말을 많이 하는)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이야기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승철이 말한 가상(假想)은 허위나 가짜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생명의 부풀림이라는 점이다. 신승철이 빵의 부풀림을 가상 현실로 규정하는 것은 빵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은 실제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승철은 가상현실은 생명의 부풀림이 만든 생명의 영토를 품고 있기에 가상 현실이야말로 진짜 현실이 아닐까, 란 말을 한다. 이상이 음식과 철학적 상상력이 연결되는 장면들인데 독자들이‘식탁 위의 철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사실들에 한정(限定)하지 않는다.

 

흔히 마르크스, 푸코, 들뢰즈/ 가타리는 니체 계열의 사상가로 불린다. 이런 규정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철학자들간의 관계(계보)이다. 본문 역시 들뢰즈,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등을 이단적인 철학자로 규정해 철학자들의 계보도를 제공한다.(41 페이지) 구체적으로 그것은 아카데미를 빛낸 위대한 철학자 들뢰즈가, 고줄 출신의 별종 혁명가 가타리를 만나 완전히 타락과 방황의 길로 들어섰다는 세평(31 페이지), 펠릭스 가타리는 니체의 권력 의지와 스피노자의 역능 사이의 공통 분모에 주목하고 이를 합성시켰던 질 들뢰즈와 달리 니체에 타협하지 않는 스피노자주의를 전개했다는 내용(41 페이지), 들뢰즈가, 아이의 포르트 - 다 게임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을 읽은 프로이트와 달리 아이의 반응으로부터 매 순간 새로운 생성과 긍정의 계기를 읽어냈다는 사실(17 페이지) 등이다.

 

가타리가 들뢰즈의 차이 개념에, 욕망하는 기계 개념을 도입해 그것을 강렬해지고 반복되며 생산되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사실(30 페이지), 스피노자는 정신이 장악하지 못한 신체의 영역이 있다는 점과 신체 변용을 이루지 않는다면 정신이 관념을 획득하는 것도 어렵다고 보면서 정신의 외부에 또 하나의 사유 방식이 있다는 점을‘에티카’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으로 갖고 있었다는 사실(64 페이지)도 그렇다. 무의식이란 개념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이 프로이트라면 무의식이란 개념을 창안한 사람은 스피노자이다. 반면 프로이트가 가족 생활의 내밀한 무의식으로 한정시킨 무의식 개념을 사회적, 역사적 무의식, 그리고 모든 장소와 기계장치에 서식하는 더욱 확장된 무의식 개념으로 바꾸어 외부성의 영역을 사유하며 스피노자 전통을 부활시킨 사람은 가타리이다.

 

횡단성(가로지르기)이란 개념을 처음 창안한 사람은 펠렉스 가타리로 그가 그 개념을 발견한 것은 정신질환자들의 치유 과정을 묘사하기 위한 과정에서였다(217 페이지)는 사실 역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의 전통 음식과 일상의 음식, 양념 등을 함께 다룬‘식탁 위의 철학’이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미세한 차이 생성, 소수자 되기, 자본주의의 획일적 틀에 포섭되지 않는 새로운 배치와 계열화 창조 등이다. 배치는 프로이트의 콤플렉스 개념에 맞서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안한 개념이다. 배치는 어쩔 수 없는 구조가 아니라 바뀔 수도 있고 유한하며 국지적이고 찢어지거나 변형될 수 있는 것이다.(246 페이지) 중요한 것은 스피노자의 변용 개념인 되기는 나와 너 사이의 부드러운 흐름, 자신의 존재와 이기를 이동시켜 전혀 색다른 존재가 되는 실험이다.

 

되기는 궁극적으로 지각 불가능하게 되기를 지향한다. 투명 인간 되기의 의미를 지닌 지각 불가능하게 되기는 자신의 욕망이 우주의 먼지와 같은 것임을 깨닫는 것이며 더 작고 낮은 곳으로 향해 자신의 존재의 족적과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랑의 궁극적 경지와 같은 것이며 불교적 의미의 해탈과 같은 개념이다.(142 페이지) 이 되기와 상응하는 것은 펠릭스 가타리의 횡단이다. 횡단성은 자유로운 사유와 행동의 잣대이다. 이런 결론에 이르면 식탁으로부터 사유 거리를 길어올린 책으로서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냐는 말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욕망하는 기계란 사회구조를 한꺼번에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자유롭지만 고도로 조직된 기계 작동을 통해서 점차 바꾸어나가는 행동 양상(31 페이지)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