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위험한 비너스>의 가독성은 장난 아니더군요. 한 가지 스토리지만 그 속 안에 사건은 꽤나 여러개임에도 불구하고 헷갈리기는 커녕 오히려 즐겁고 더 흥미진진한 느낌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재미난 부분도 많았고요.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처음부터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것을 전제하고 글을 쓴게 아니냐? 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딱 그랬습니다. 소설을 읽는 듯 하면서 왠지 드라마 극본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고 해야할까요. 그러면서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 개성있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최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많이 아쉽다, 라는 말이 많은데(저 또한 과거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만) 역시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매번 나올 때마다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 책으로 깨달았네요.

<위험한 비너스>는 동물병원 수의사 데시마 하쿠로에게 이복 동생 야가미 아키토의 부인이라는 낯선 여자 가에데로부터 전화가 오면서 시작합니다. 시애틀에서 같이 귀국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야가미 아키토가 사라졌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였는 데요. 이미 몇년 동안 왕래가 없었던 동생이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던 하쿠로는 그녀와 함께 오래 전 연을 끊었던 야가미 가문과 다시 얽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16년 전 사고로 사망한 어머니와 친아버지가 죽기 직전 남긴 미술 작품의 행방 등에 관한 단서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더욱이 양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한 상태에 야가미 아키토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유산 상속과 관련하여 야가미 가문의 사람들이 속내를 숨긴 채 모이면서 동생의 실종이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닐 지도 모른단다는 것을 예감하기 시작한 하쿠로.

그저 단순 실종 사건으로 치부되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야가미 가문과 데시마 가문의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 보이는 데요. 전혀 연결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사건들이 조금씩 연관되어 가면서 사건이 하나, 둘 합쳐지는 과정이 상당히 인상깊습니다. 사건의 해결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 초중반에 크게 사건을 키워가던 것에 반해서 후반부에선 사건이 좀 축소된 기분이 들거든요. 그러나 왠지 모르게 깔끔하게, 그 많은 사건들이 해결되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복잡하게 얽힐 것만 같던 사건들 때문에 스토리 이해가 어렵진 않을까?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억지스럽지 않게,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독성 높은 문체 덕분에 읽는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사실 <위험한 비너스>에는 일반적으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뭐 뉴스에서는 여러번 등장할 지도 모르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서번트 증후군, 프랙탈, 울람나선 등의 용어가 등장합니다. 이과이신 분들은 좀 나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전 처음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는데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를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설명해주는 데 적당히 스토리를 이해할 만큼의 정보만을 던져주어 상황 파악이 쉬웠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물 학대, 성공만능주의 등의 수많은 현대 문제를 독자가 인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여주고 언급하면서 사회파 느낌도 슬쩍 들고요. 가벼워보이지만 있을 만한 것은 다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구하는 미스터리적 요소가 독자의 흥미를 끌면서 적재적소에 잘 버무려져 있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