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참 좋아하지만 소설은 살짝 취향을 타요.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말하기도 좀 애매하다고 해야할까요. 시간이 흘러 다시 보게 되면 확실히 처음보단 좋아합니다만은 꼭 처음 들추어 볼 때는 취향에 안 맞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굳이 <기사단장 죽이기>를 예약 구매한 것은,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읽고 싶단 생각도 들어서였겠지만 왠지 놓치지 않고 이번엔 꼭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어서인데요. 아직 1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놓치지 않고 읽기를 주저하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1권에서는 초상화 화가로써 나름대로 입지를 쌓고 있던 ‘나’가 부인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에 집을 나오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친구 아마다 마사히코의 도움을 받아 그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 아틀리에에 몸을 의탁하게 되는 데요. 어느 날, 아틀리에에서 생전 공개되지 않았던 아마다 도모히코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편, 골짜기 건너편의 부호인 멘시키가 거액의 초상화를 의뢰하고 그 뒤 집 뒤편 돌무덤 아래에서 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멘시키의 도움으로 돌무덤을 드러내자 거대한 원형 석실이 모습을 드러내고 들려오던 소리의 주인공인 방울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기사단장 죽이기란 작품의 기사단장이 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멘시키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하는 데요.

1권만 해도 568페이젱 달할 정도로 두꺼운데 가독성이 장난 아닙니다. 더욱이 주인공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이 소개되고 나와 함께 경험하게 되는 데 이야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아니, 재미있다기보다는 제각각인 듯한 이야기가 하나, 둘 연결이 되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도대체 기사단장은 누구인지, 멘시키는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읽으면서 하나 둘 비밀 한꺼풀이 벗겨지지만 그보다 더한 비밀이 꽁꽁 그들을 감쌉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도대체 기사단장이란 존재는 왜 나에게 나타난 것인지, 부인은 왜 이혼을 고했는 지, 나가 그리는 초상화들은 무엇인지, 프롤로그에 그 얼굴 없는 남자는 누구인지, 멘시키는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하는 건지, 아마다 도모히코는 왜 기사단장 죽이기를 미공개한 것인지, 같은. 수많은 비밀들이 연신 읽고 있는 저를 강타하더군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가며, 나와 함께 의문을 정리해보지만 의문은 늘기만 하고 줄지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면서 그 상상대로 흘러가면 즐겁고, 상상과 전혀 다른 길이라면 놀랍고,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 책은 도대체 어떻게 끝날지, 무슨 내용으로 전개가 될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책 제목도 등장하는 아마다 도모히코의 작품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지만 뭔가 아직 숨어 있는 기분도 들고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항상 신선한 맛이 있는데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도 책 표지나 제목이 주는 상투적인 느낌에 비해서 내용은 정말 좋네요. 개인적으로 이번 책 제목도 그렇지만 책 표지가 영 취향이 아니었던 지라 아쉬웠었거든요. 2권까지 읽으면 좀 이해가 가려나 싶기도 하지만은. 그리고 몰랐는데 책 부제에서 이미 몇가지 힌트가 있었더군요. 보면서 참 대단한 작가임을 다시 상기했습니다. 얼른 2권 읽어서 돌아오겠습니다.